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2013년 연말, 창문 밖 풍경

근 일주일간 비와 눈이 반복 되더니 창문 밖으로 얼음눈 세상이 펼쳐졌다. 미시간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은 화보집으로 만들어도 좋겠다 싶을만큼 색깔이 뚜렷하고 경이롭도록 아름답다. 올 겨울은 특히 그렇다.

텍사스에서 보낸 오년 동안 잊을 수 없는 많은 추억들이 있었음에도, 지금 살고 있는 미시간이 텍사스보다 한 오백 이십배쯤 더 좋은 이유기도 하다.

부엌 창문


2층 안방의 창밖 풍경

2층 마루 창문밖 풍경


1층 마당으로 나가는 문밖 풍경

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피아노 반주자로 세 학기째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피아노에서 떠난지 근 이 십년만에 다시 피아노를 치며 돈을 벌고 있다. 비록 부수입 정도지만 말이다.

기회가 되면 작은 합창단 반주자 정도는 언제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히 있었는데, 교회 같은 종교모임에 참여 하지 않는 내게 그런 기회는 역시나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플린트 미시건 대학 (University of Michigan at Flint) 음악과에서 피아노 반주자로서 세번째 학기를 별 탈없이 마친 지금도 실감이 잘 안난다.

플린트 미시건 대학 (UM-Flint)은 우리집에서 차로 겨우 한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대학이다. 우리 아이들과 내가 미시건에 온 이후로 가장 자주 들리게 된 플린트 음악학교 (Flint Institute of Music) 와도 겨우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다. 이 학교는 우리 동네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앤아버 (Ann Arbor) 란 도시에 있는 유명한 미시건 주립학교 (University of Michigan의 분교쯤 된다.

2012년 영주권을 받은 직후 이 학교에 이력서를 보낸 후로 벌써 일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해 6월부터 음악과 반주자로 등록되어 학생들의 반주 요청을 받아 일을 하게 되었다. 정식 교직원으로 고용된 건 아니고, 말하자면 객원 피아니스트나 객원 반주자 정도라고 할 수 있다학교 교수나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나에게 반주를 요청하면 나의 사정에 따라 연습 반주, 렛슨 반주, 연주 반주 등을 하는 것이다. 아직 이 학교 음악과엔 현악 전공은 없어서 주로 성악과 관악 전공 학생들을 반주 한다.

지난 3학기 동안, 다시 대학교 교정을 오가며 무언가를 하게 되었다는게 무엇보다 활력이 되었다. 피아노 연습이나 음악공부와는 담쌓고 보냈던 내 대학생활도 문득 문득 떠올랐다. 그 시절엔 대학시절 연습실에서 시끄럽게 발성연습을 하던 성악과 친구들도 참 극성스럽게만 보였는데, 플린트 대학에 일하러 다니게 되면서는, 오스틴을 떠나온 후로 오랜만에 듣는 음악과 학생들의 연습 소리와 멀찍이서 들여다 보는 그들의 일상이 다 좋아 보이기만 한다. 음악과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활동들이 다 멋져 보이고, 예뻐 보이며, 감동스럽다성악과 렛슨을 들어가 교수와 학생의 연습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행복하고, 학생들의 공개 렛슨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플린트 미시건 대학 포스터. 내 오른쪽 아래
알토색소폰을 부는 학생이 나와 3학기째
함께 연주하는 레베카.
반주를 해주는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의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지켜 보는 보람도 크다대학시절 내가 반주를 해주었던 그 성악과 복학생이며 나에게 자신의 작품 연주를 맡겼던  작곡과 학생은 지금쯤 어딘가에서 어떤 활동을 하며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씩 하게 된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지난 주 금요일에 있었던 학생들의 학기말 실기시험에선 3명의 학생을 위해 6곡을 연주 했다. 성악전공 Cara가 세 곡을 불렀고 알토 색소폰 두 곡, 트럼펫 한 곡이 있었다. 알토 색소폰 학생인 Rebekah는 이번이 나와 벌써 세 학기째 연주였다. 이번 학기의 보람도 역시 학생들로부터 받은 감사 인사였다. 카라는 실기 시험 연주 후,  교수들로부터 최고 (outstanding)” 였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메시지를 보내왔고, 이번 학기에 나와 처음으로 연주했던 트럼펫 전공 Matthew도 연습과정 동안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실기시험을 잘 치뤄서 무척이나 뿌듯했다.

메튜는 하루 종일 있었던 실기시험의 가장 마지막으로 주자였다. 메튜의 연주를 끝내고 밖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 왔을때 메시지가 왔다.

“Thank you again for accompanying me for my jury.
I am very happy with how well everything went.”

메튜는 변박이 많은 켄트 케난 (Kent Kennan) 의 트럼펫 소나타를 피아노와 맞춰 연주하는데 익숙하지 않아 실기시험 당일 날도 긴장을 많이 했다. 나 역시도 오전에 실기 시험을 치룬 레베카의 두 곡 중 한곡을 엉뚱하게 망치고 난 터라, 메튜 순서를 앞두고는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다행히도 둘 다 집중력을 가지고 열심히 연주했던 덕인지, 마지막 화음을 트럼펫과 강렬하게 함께 마치면서 느낌이 좋았다. 실기시험이 아니라 진짜 연주를 한 기분이었달까. 메튜의 트럼펫 소리도 시원 시원 했고, 우리 둘의 앙상블도 잘 어우러졌던 것 같다. 그렇게 안심하고 돌아 왔는데, 메튜에게서 너무 잘해서 기분 좋았고,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니 2013년을 마무리하며 뜻깊은 순간이 되었다.

첫학기에 관악기 반주 곡이 하도 어려워 어떻게 해 낼지 감도 안잡히고 막막하기만 했던 게 기억난다. 기왕 하게 된 거 한번 해보자 마음 먹고 매일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아 임시표와 복잡한 리듬들과 씨름을 벌였다. 매 학기 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관악기 반주곡을 계속 새롭게 맡다 보니 3학기를 지난 지금은 그렇게 새로 완성한 반주곡들이 어느새 열 곡에 육박해 간다. 대학때 이렇게 끈기있게 열심히 했다면 나처럼 음악적 재능없는 사람도 피아노과 교수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지금 나는 학생들과 음악을 만들어 가는 그 순간이 좋고, 멋진 연주를 위해 몇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을 하는 것이 행복 하다는 사실이다. 음악을 느끼지 못하면서 음악을 하던 그 시절엔 젊음이라는 가장 큰 재산과 가능성이 있었어도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아니, 시도 하지도 않았다.

피아노 반주자가 내 삶의 최대 꿈도 아니고, 그저 하나의 직업으로서 제대로 한다고만 해도 갈길은 아직 멀고 멀었다. 하지만 이십대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건, 잘하든 못하든, 내가 능력이 되건 되지 않건, 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게 내가 새로 배운 삶의 교훈이다.

나이가 제대로 든다는 건, 계속 무언가를 새로 배워 간다는 거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는 언제까지나 미숙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3학기, 짤리지 않는 한, 최소한 30학기는 버텨볼 생각이다. 그때가면 지금보다는 최소한 코딱지 만큼 나은 반주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DUNE 1 and 2

한국에서 Dune 1을 본게 아마도 나온 직후. 이유는 모르겠으나, 영화 예고편을 보자마자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라메라는 배우에 빠졌다. 부드럽고 섬세해서 유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배우가 강한 카르스마까지 아우르니 그의 연기에 빠져들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