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이백여명의 승객을 실은 말레이지아 비행기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있었다.
꼼지와 나의 무사귀환이나, 그간 집을 잘 지켜낸 하늘 바다와의 밤늦은 포옹은, 더이상 상투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름도 모르는 그들의 불행에 내 행복을 비교해서만은 아니다. 아이들도 우리도 지난 4박 5일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하늘이는 지난 금요일 자동차 면허를 따서 엄마 아빠도 없이 동생을 태우고 동네를 누빈 지난 몇일이다. 그애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시간이 될테다. 아이들은 청소년기의 정신적 성장으로 꼼지와 나는 중년기의 인간적 성숙으로, 이처럼 더 성숙해진 우리 네 식구들의 포옹, 절대 상투적이거나 형식적일 수 없었다. 심지어 고양이 허비도 그간 더 살이 올라 펑퍼짐해진 것이 걱정스럽기 보단, 한층 숙성해졌나 싶어 미소가 지어졌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프랑스의 앙제라는 작은 도시를 다녀온 감상이 8시간의 비행과 5시간여의 시카고-미시건 자동차 여독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흥분과 생기로 집안일을 시작 한다. 내 몸에 받아온 프랑스 앙제의 기를 우리집에 풀어 놓을 준비가 된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니, 늘 똑같던 우리집서 보내는 일상이 말그대로 또다른 여행처럼 느껴져 없던 힘도 막 솟는 것 같다. 집에서 맞는 아침이, 근 십년 살았다고 미국 우리집에서 친정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매력적으로는 들려도 완전 까막귀에 벙어리였던 불어에 비하자니, 아침 뉴스에서 들리는 영어는 고맙기까지 하다.
미시건의 온도와 공기도 조금은 온화해진 것 같아, 창문의 커텐들도 해가 미처 밝기전에 열어 젖혔다. 아이들은 아쉬운 짧은 대화를 남기고 학교로 갔다. 싱크대 주변의 시커멓게 탄 후라이팬과 쌓여 있는 설겆이를 하고 꼼지의 도시락을 싼 후 커피를 올리고 사과와 요거트로 아침을 먹고 있다.
천상병 시인은 '삶은 소풍'이라고 노래 했다. 난 요즘 '삶은 여행'이라고 느낀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여행, 계절과 계절 사이의 여행, 공간과 공간 사이, 그리고 여행과 여행 사이의 여행. 지금은 집에서 여행 중이다. 다음번 여행으로 돌아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