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1 - 24. 국립극장 달오름
국립무용단(예술감독 손인영)
더블빌
- 신선(안무 고블린 파티, 음악 지경민)
- 몽유도원무(안무 차진엽, 음악 haihm 심은용)
1.
전통무의 현대화 세계화를 표방하는 국립무용단이 "기동성을 위해 사이즈를 줄이고, '한국적'이라는 대표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세계적 시각에서 밀리지 않는 예술성을 담보"한다는 목표아래 펼친 무용 공연이다.
"신선"은 무용수들이 마이크로 해설도 하고 찻상과 술잔 같은 소품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듯 다양한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춤에서도 전통 춤선, 팝핀, 아트로바틱 같은 여러 몸짓을 혼합하였고 무용수들 사이에서도 같은 듯 다른 듯한, 서로 미세하게 어긋나면서도 한편으론 통일성을 잃지 않는 안무를 연출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신선과 술놀음의 연결이 개인적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오진 않았다. 게다가 술놀음에서 비롯되는 많은 몸의 표현들이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많아 그저 술취한 모습의 반영 정도로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신선의 인간화를 그린 것은 아니었을테니, 세속의 술놀음을 연상시키는 몸짓들을 쓸거였다면 뭔가 더 확실한 의도나 궁극적 지향점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예를 들자면, (술)놀음을 넘어 자유, 해방, 허무(무, 부질없음), 또는 더 나아가 어떤 상상의 새로운 '신선의 놀음'을 추구했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이런 추구를 하지 않고 그저 다양한 소재와 움직임을 붙이고 나열하면서 보여주는 것이 혹시 새세대의 특징이나 유행인가하는 의문도 들었다. 어쨋든, 나에겐, 내용적으로 '신선놀음=술놀음"이라는 인상으로 끝난 무대 같아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동은 없고 껍질만 남긴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2.
더블빌의 두 번째 무대였던 <몽유도원도>는 이 공연후기를 쓰게 된 이유다. 안무, 미디어아트, 내용, 음악, 의상까지 신선하면서도 의도와 표현이 잘 형상화되고 잘 전달된 개인적으로 아주 좋게 본 무대였다. 안무가를 몰랐던 터라 이름도 그렇고 무대도 부드러움과 강함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높은 기운을 전달하여 남성 안무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여성 안무가였고 이미 명성이 높은 분이었다.
3장으로 구성된 무대의 스토리 전개도 아주 잘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진부함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첫장의 미디어 아트와 군무가 함께 만들어간 무대는 몽유도원도의 수묵화를 뚜렷하게 그려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몽유도원에 대한 상상력을 순간적으로 극대화 하는 것이었다.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현묘했다. 그 긴장감은 음악과도 온전히 하나가 되며 이어져서 더 인상적이었다. 사용된 소품이나 의상들도 매력이 넘치면서도 전체적으로 아주 잘 어우러지며 돋보여서 놀랐다. 물론 무용수들의 기량도 무대 내내 차고 넘친다고 느꼈다. 그 속에서 한국의 춤 맛이라고 말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기본을 이루며 완성된 작품속에 너무나 잘 녹아 있는 것 같았다.
3.
무엇보다 이 공연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음악이었다. <신선>과 <몽유도원무> 모두에서 전통에 기반하여 전자음향이 혼합된 새로운 무용음악을 완성하였다. <신선>은 민요를 불협화음으로 중창화한 것이 기억에 남았다. <몽유도원무>의 음악을 맡았던 심은용은 그룹 잠비나이의 단원이자 거문고 연주자라고 한다. 이번 무용음악 작업을 어떻게 진행하면서 이런 결과물이 나왔던 건지 궁금해질 정도로 음악적 상상력과 구체적 작업이 이번 무용공연과 아주 잘 어울리면서도 완성도가 있었다. 방점을 찍는 듯한 긁힘 소리같은 현대적 사운드도 아주 좋았고, 거문고의 힘있는 본질적 소리도 아주 돋보이게 활용하였다. 개인적으로 '거문고의 귀환'이란 말이 떠올랐다. 몽유도원도라는 그림과 거문고가 역사적 맥락 안에서 찰떡같은 궁합으로 재 결합한 느낌이었달까. 두 작품 모두, 무용음악 만으로도 다시 들으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게 하는 그런 결과물이었다.4.
역시 멋진 공연을 보니 삶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특히, <몽유도원무>는 오랜만에 말이 쏟아져 나오는, 설명이 하고 싶어지고 궁금증이 마구 유발되는 그런 공연이었다. 그것이 이 공연후기를 남기게 된 이유다. 이 공연을 보고 나니, 그동안 본 공연들도 아주 짧게라도 기록을 남겨볼까 하는 욕구까지도 든다. 어제 공연이 확실히 나에게 새로운 기운을 준 건 맞는 거다. 사람의 몸으로 보여주는 무용 무대. 원초성과 원시성, 본성과 사회성의 갈등이 무용수의 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그런 인간 모순의 모습이 음악, 무대미술 등의 다른 예술장르와 결합해 하나의 무대에서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이번처럼 무용공연에 매료되는 이유란 생각도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