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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금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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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만 해도 눈이 날렸더니 오늘은 따사로운 햇살이 내 공부방에 가득이다. 우울하던 2월이 가고 화사한 3월이 온다. 가고 오는 날들이 요술같다. 햇빛이 비치니 방안의 사물도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내 방의 평화로운 풍경이 요즘은 한국 소식과 대비되어, 티도 못내는 속이 아프다. 역사의 오명 같은 이가 대통령 권좌에 앉아 국가의 안녕이 아니라 압박과 전쟁을 외치고 있다. 한국의 앞날은 저 햇살과 같지만은 않을 것 같다. 나라를 이렇게 만든 우리 모두가 원망스럽다. 너무 원망스러워 대선 후 몇 개월동안 언급조차 하기 부끄럽고 싫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란 건 그만큼 상처와 절망이 컸다는 걸테다. 노무현 죽음으로 마음의 팔 하나가 잘려 나간 후에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버둥 거렸다. 막장 드라마에도 있는 인과응보, 권선징악, 해피엔딩,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겐 없었다. 잔인하게도 이젠 다리 하나쯤 더 빼앗긴 것 같은 더러운 쓰레기 냄새에 피비린내까지 풍기는 잡귀들이 지배하는 일상이 남았을 뿐이다. 꼼지와 나는 여직 한국 정치 사회에 대한 얘기는 에둘러 간다. 모자르고 또 모자른 내 삶에 다시 3월이 오고,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요술처럼 하루 하루가 가고 온다.

2013 플린트 청소년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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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는 특히 이번 공연이 지금까지 해온 모든 공연에서 가장 좋았다고 했다. 연주하면서 감동이 마구 밀려 왔다고... 무대 뒤에서 연주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 음악 안에서 아이들의 얼굴이 변해 가고 키가 커간다. 음울 했던 얼굴이 펴지고 어느날은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서 연주를 마친다. 처음 미시건으로 이사 와서 플린트 음악원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단원이 된 바다를 따라 다니며 1년 내내 연습과 연주회를 구경했던게 2009-2010년의 일이다. 그렇게 내내 그 시간에 바느질이나 책을 읽으며 주변을 맴도는 대신 차라리 참여해서 연주를 하자고 시작 했던 건 2010-2011년 학기부터다. 벌써 3년 째다. 무대 뒤편에서 점심도 먹고 휴식도 하고 첫 해는 부모 자원봉사 연주자로 바이올린을 했고 그 이 후로 이 년간은 비올라를 하고 있다. 대체로 중학교 2-3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반 아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서 두 아들과 함께 내내 연습과 연주를 함께하는 아줌마로 보내 온 시간이다. 삼년째인 올해는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연습 중에 정기연습 한번만 참여하고 있는데 그것도 좀 꾀가 나고 힘이 든다. 반주자 일을 시작해서 인가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 시간에 뭐 돈되는 일을 해야하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해서다.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내내 곁에서 쫓아 다니며 오케스트라 시절을 보내는게 더 좋은 건지, 아님 엄마의 존재 없이 이 시절을 보내는 게 더 좋은 건지도 간혹 왔다 갔다 한다. 엄마가 오케스트라에 같이 있으니 자기 스스로 책임지고 더 알아보기 보다는 엄마가 어련히 다 알아서 하려니 생각하고 무심해 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것도, 다 엄마가 얼마나 현명하게 다루고 조절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하늘 바다도 나도 간혹 이 빡빡한 연습과 연주 일정에 지치고 꾀가 나서 빠지고 싶어 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정기연주회가 돌아오고 플린트에서 제일 크고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