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시월의 금요일 밤이다. 단풍이 한창인 이 계절은 사십대 중반이 되어도 가슴을 내려 앉게 하는구나. 이럴까 저럴까 게으르게 미루고 있다가, 작년 9월 이후 처음으로 미장원에 다녀 왔다. 현금 $16 주고 어깨까지 닿던 머리를 귀밑으로 짧게 잘랐다. 이젠 나이가 들어선가, 머리 분위기를 획기적으로 바꾸어도 내 모습이 크게 달라 보이질 않는다. 그저 여전히 나네... 싶다. 미장원 의자에 앉아서 커다랗게 난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만 내내 보다 왔다. 이젠 심지어 그리 싫어 하던 한국 미장원 마저 그립구나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이맘때는 새로 시작한 가을 학기가 한창 중반으로 접어 들면서 정신없어 진다. 최근에 맡은 트럼펫과 알토 색소폰 반주 악보를 오늘에서야 다 받은 터라, 사실 내일부터 나 역시도 눈코뜰새 없이 반주연습에 바빠질 참이다. 그런데도 오늘밤은 슈스케 5를 보고 나서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로 성시경을 틀어 놓고 맥주 한 병으로 시간을 정리 하는 여유를 부려 본다. 꼼지도 가을을 타는지, 퇴근해 집을 들어 서며 일없이 '우울해...'를 반복 하였다. 삶의 모퉁이마다 문득 문득 드는 생각, '사는 게 뭔가, 뭘 위해 이리 바둥 바둥 사나'란 화두는 그에게나 나에게나, 이십 때나 지금이나 사라져주질 않는 듯하다. 뭐든 오래 묵으면 본래의 실체는 사라지고 그저 자연의 한조각처럼 다 거기서 거기 같은 비슷한 형질로 바뀌는 것 같다. 나와 꼼지도 이젠 같은 장 항아리서 오래 묵어 가는 동치미가 되어 가는 걸까. 미움과 상처보단 애틋함과 연민으로 깊은 국물맛을 들여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겨울이 다가오면 그 풍미가 더 깊어질까. 사람의 관계란게 시간을 쌓아 가며 변치 않으면 그 깊이란게 한정없이 나아가는 것 같다. 몇십년 된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당할 주변의 사람들이 영 생기질 않는다. 관계라는게 노력한다고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이제는 포기 하고 산다. 심지어는 십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