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14의 게시물 표시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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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서 아이들이 죽어 가는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분명히 살아 있을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이역만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그 날들도, 저 물살처럼 부질없이 흘러가고 있다. 하루 하루 말을 잃어가는 기분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때 난 정말 멘붕에 빠졌더랬다. 그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다독거리는데 일년도 넘게 걸렸다. 이제서야 겨우 생각을 추스리면서, 사람이란게 희망없인 살 수 없는지라, 최소한 사람 죽는 일만없이, 사람들 크게 괴롭히는 일만 없이 임기를 끝내주기를 바라자고 마음 먹는 중이었다. 그 마음조차 어리석었다는 것을 지금 정부는 또박 또박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정부를 탄생시킨 사람들이 결국 잠재적 살인자였다는 것을 세월호는 또박 또박 이야기해 주고 있다. 나는 기독교의 신인 하나님이  자식을 바쳐야만, 또는 그 시늉이라도 해야만, 말을 들어준다는데 치가 떨렸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은 자식들을 떼로 물속에 수장하고도 신에게서 철저히 외면 당하고만 있는 것 같은 형상이다. 아이들의 떼죽음을 목격하면서도 '그래서 어쩌라구'라는 말을 하고,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서도 반성은 커녕 큰소리를 치면서 자기 밥그릇에 흙이 튈까 걱정하는 이들로 판을 친다. 기적이란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의 노력과 힘으로 생겨나는 것일텐데, 단 한 명의 생존자를 구하는 그 작은 기적조차 이루지 못했다는 건, 세월호의 아이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턱없이 적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정부가 힘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이, 비판이 나오는 거다. 정당하게 옳은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말조차 듣지 않는 사회,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막고, 감시하고, 불이익을 주고, 잡아가는 사회, 이 사회, 이 정부를 어떻게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2014년이다. 이 숫자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진다. 1980년 광주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사회를 보면서 어떻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지 않...

4월의 밤: 봄 밤이라 하고 싶은데, 다가 올 한 주는 다시 영하라네...

꼼지와 함께 오랜만에 맘 먹고 술 한잔 했다. 꼼지는 김어준의 KFC를 보고, 난 KFC의 지네끼리 의식에 짜증이 나서 괜히 꼼지에게 투덜대다, 한국 음악 방송을 컴퓨터에서 틀었다. 그것도 조금 보다 짜증이 나서 그만 두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머릿속은 아우성인데 정작 쓸 수 있는 건 한 소설 열 편정도의 첫 문장들뿐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나오는 건 찡그린 얼굴에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응 없는, 나만의 아우성 뿐이다. 그리곤 10분 후 반성, 하늘 바다에게 다시 웃음 짓기. 꼼지에겐 좋은 아내가 되고 싶은데 두부 김치 술안주 하나 달랑 해 놓고선 계속 꼼지가 보는 정치 방송들에 대해 궁시렁 거리기.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쯤, 함께 술 한잔 편안하게 기울이고, 한국 방송 이것 저것 인터넷에서 틀어 보면서 딴지도 걸고, 시비도 걸고, 내 맘 내키는 대로 지껄여 볼 수 있다는 걸 행복하다 여긴다. 진심이다. 꼼지는 맥주 두 잔 먹고 지쳐 가버리고, 남은 나는 인터넷을 여기 저기 돌아 다니다가 결국, 내 블로그에 안착하여, 페북에나 올릴 글을 지껄여 본다. 한동안, 술먹고 나면, 카톡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심지어 시어머님께도!!! 으악!!!) 에게 전화를 걸어, 돼도 않는 술주정을 해대어 다음날 기절할 지경이었고, 그 이후론, 카톡으로 메시지 (심지어 이건용 선생님에게까지!!! 으악!!!) 를 보내어 다음날 아침 그걸 다 지워 버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후론, 진짜 결심, 술 먹고, 전화하거나 카톡하지 않기! 하면 죽인다! 차라리, 아무도 오지 않는 내 블로그에 지껄이는 편이 제일 안전할듯...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라도 지껄이지 않으면 병원에 갈 신세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여기선 술에 취에 맘껏 지껄일 대상이 없으니. 지껄여 내버려야 할 쓰레기들이 잔뜩 몸 안에 쌓이면 썩어가는 쓰레기 냄새와 개스에 질식하여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거라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늘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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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작사/작곡자인 강승원의 음악을 들었다. 음악인들 사이에선 대단히 잘 알려진 사람인 듯한 그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1집 음반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가 들려준 신곡은 '나는 지금 (40 something)'이다. 가사의 시작이 이렇다. "떠나 보내는데 익숙해졌어. 떠나 가는 것도 마찬가지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고 싶지만, 나는 지금..." 얼마전에 읽은 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완서 선생님이 그랬다. 우리가 책에 밑줄을 그을 때는, 그 문장이 명문이거나 엄청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건, 그때 그당시 독자의 마음이 그 문장과 너무나 똑같아서다. 자신의 마음에 줄을 치고 있는 셈이다. 이 노래를 듣는데, 그런 마음이었다. 강승원, 아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와도 같겠다. 죽지 않는 이상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서른 즈음의 시기, 우리들은 노래에서와 같은 꼭 그런 마음을 품게 된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강승원의 '나는 지금'을 듣는데 그랬다. 그 노래 같았다. 살아 오면서, 난 남아 있는 쪽 보다는 떠나는 쪽이었다. 살면서 떠나는 건 사람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어디에서고 오래 버티지를 못했던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도, 일도, 꿈도, 의지도. 뭔가를 악착같이 붙들었던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그런 일이 한 두번 있었을른지도 모르지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별로 남아 있지 않다면, 그건 '악착'이란 말을 붙이기엔 부족하다. 그리고 이제는 떠나 보내는 것에도 꽤 익숙해졌다고 느낀다. 사람도, 관계도, 일도, 꿈도, 의지도 떠나가면 떠나가는대로 보내며 사는 거지라고 ...

사업자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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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e Proprietorship 이란 걸 하고 왔다. 자영업자 등록이라고 해야 하나. 영주권을 받은 후, 학생 한 두명씩 가르치고  간혹 피아노 반주하면서 용돈 벌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적은 액수이지만 가끔씩 플린트 음악원이나 미시건 플린트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돈을 받는 일이 생긱기도 했다. 얼마전부터는 플러싱 (Flushing) 이라는 옆동네 작은 음악학원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가게 되니, 아무래도 등록을 하고 일을 하는 게 마음이 떳떳할 듯 싶었다. 얼마전부터 자영업자 등록 방법을 알아보았다. 지난 주엔 맘을 먹고, 실천에 옮기려 내가 살고 있는 시인,  Grand Blanc 시청도 찾아 갔다. 헌데, 일단 구글에서 찾아간 주소가 잘못되었는지 어쨌든 건물도 못찾고 허탕을 치고 왔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며 다시 사업자 신고를 하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몇일 전, 창밖을 내다 보며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찻집을 갈까 하다, 내친 김에 일단 Grand Blanc 시청을 다시 찾아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번엔 성공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업자 등록을 하러 왔다고 했다.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주소를 달라고 했다. 주소를 보더니,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같은 그랜드 블랭이긴 하지만, 내 주소는 타운십 (Grand Blanc Township) 에 속에 있다고 거길 가라고 했다. 그래서 간 곳이, Grand Blanc Township 시청 건물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경찰서 건물이 하도 번지르르 해서 사실 그곳으로 먼저 들어 갔더랬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다시 차를 몰아 조금 더 가니, 경찰서 건물 뒤편에 평범하게 생긴 시청 건물이 있었다. 아, 이젠 제대로 찾았나보다고 들어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사업자 등록을 하러 왔다고 했다. 왠걸,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얘 뭐래냐...'는 표정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