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2일 화요일

세월호


세월호에서 아이들이 죽어 가는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분명히 살아 있을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이역만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그 날들도, 저 물살처럼 부질없이 흘러가고 있다.

하루 하루 말을 잃어가는 기분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때 난 정말 멘붕에 빠졌더랬다. 그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다독거리는데 일년도 넘게 걸렸다.

이제서야 겨우 생각을 추스리면서, 사람이란게 희망없인 살 수 없는지라, 최소한 사람 죽는 일만없이, 사람들 크게 괴롭히는 일만 없이 임기를 끝내주기를 바라자고 마음 먹는 중이었다.

그 마음조차 어리석었다는 것을 지금 정부는 또박 또박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정부를 탄생시킨 사람들이 결국 잠재적 살인자였다는 것을 세월호는 또박 또박 이야기해 주고 있다.

나는 기독교의 신인 하나님이  자식을 바쳐야만, 또는 그 시늉이라도 해야만, 말을 들어준다는데 치가 떨렸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은 자식들을 떼로 물속에 수장하고도 신에게서 철저히 외면 당하고만 있는 것 같은 형상이다.

아이들의 떼죽음을 목격하면서도 '그래서 어쩌라구'라는 말을 하고,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서도 반성은 커녕 큰소리를 치면서 자기 밥그릇에 흙이 튈까 걱정하는 이들로 판을 친다.

기적이란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의 노력과 힘으로 생겨나는 것일텐데, 단 한 명의 생존자를 구하는 그 작은 기적조차 이루지 못했다는 건, 세월호의 아이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턱없이 적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정부가 힘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이, 비판이 나오는 거다.

정당하게 옳은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말조차 듣지 않는 사회,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막고, 감시하고, 불이익을 주고, 잡아가는 사회, 이 사회, 이 정부를 어떻게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2014년이다. 이 숫자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진다. 1980년 광주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사회를 보면서 어떻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지 않을 수 있을까.

2014년 4월 13일 일요일

4월의 밤: 봄 밤이라 하고 싶은데, 다가 올 한 주는 다시 영하라네...

꼼지와 함께 오랜만에 맘 먹고 술 한잔 했다.
꼼지는 김어준의 KFC를 보고, 난 KFC의 지네끼리 의식에 짜증이 나서 괜히 꼼지에게 투덜대다, 한국 음악 방송을 컴퓨터에서 틀었다. 그것도 조금 보다 짜증이 나서 그만 두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머릿속은 아우성인데 정작 쓸 수 있는 건 한 소설 열 편정도의 첫 문장들뿐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나오는 건 찡그린 얼굴에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응 없는, 나만의 아우성 뿐이다. 그리곤 10분 후 반성, 하늘 바다에게 다시 웃음 짓기. 꼼지에겐 좋은 아내가 되고 싶은데 두부 김치 술안주 하나 달랑 해 놓고선 계속 꼼지가 보는 정치 방송들에 대해 궁시렁 거리기.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쯤, 함께 술 한잔 편안하게 기울이고, 한국 방송 이것 저것 인터넷에서 틀어 보면서 딴지도 걸고, 시비도 걸고, 내 맘 내키는 대로 지껄여 볼 수 있다는 걸 행복하다 여긴다. 진심이다.

꼼지는 맥주 두 잔 먹고 지쳐 가버리고, 남은 나는 인터넷을 여기 저기 돌아 다니다가 결국, 내 블로그에 안착하여, 페북에나 올릴 글을 지껄여 본다.

한동안, 술먹고 나면, 카톡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심지어 시어머님께도!!! 으악!!!) 에게 전화를 걸어, 돼도 않는 술주정을 해대어 다음날 기절할 지경이었고, 그 이후론, 카톡으로 메시지 (심지어 이건용 선생님에게까지!!! 으악!!!) 를 보내어 다음날 아침 그걸 다 지워 버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후론, 진짜 결심, 술 먹고, 전화하거나 카톡하지 않기! 하면 죽인다!

차라리, 아무도 오지 않는 내 블로그에 지껄이는 편이 제일 안전할듯...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라도 지껄이지 않으면 병원에 갈 신세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여기선 술에 취에 맘껏 지껄일 대상이 없으니.

지껄여 내버려야 할 쓰레기들이 잔뜩 몸 안에 쌓이면 썩어가는 쓰레기 냄새와 개스에 질식하여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거라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몸에서 배설되는 물리적인 배설물들은 어떻게 잘 처리해 보겠는데, 이 정신적인 배설물들은 상당히 노력 중인데도 깨끗하게 잘 처리가 안되는 것 같다. 쉽지 않다.

음악으로도 배설해 보고, 일기로도 배설해 보고, 아이들과의 포옹와 뽀뽀로, 또는, 꼼지와의 다양한 대화로도 배설하는데, 그 양이 어찌나 풍부하고 종류도 다양한지 그래도 남는 것들이 있나 보다.

글을 쓰면 딱 좋겠는데, 글을 써낼만큼의 지속적 에너지(의지라고 해야 할 듯) 가 없다. 계속 글 쓸 에너지를 무너뜨려 버리는 이 에너지는 뭘까. 모를 일이다

결국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안되는 걸까, 아님 참으로 소심한 걸까, 아님 참으로 끈기가 없는 걸까.

그저 할 수 있는 건, 짤막한 언급들 뿐이다. 이런 아무것도 아닌 나를 열심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뭐 이딴 것조차 열심히 해야 하는거야. 참 내...


2014년 4월 5일 토요일

늘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작사/작곡자인 강승원의 음악을 들었다.

음악인들 사이에선 대단히 잘 알려진 사람인 듯한 그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1집 음반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가 들려준 신곡은 '나는 지금 (40 something)'이다.

가사의 시작이 이렇다.

"떠나 보내는데 익숙해졌어.
떠나 가는 것도 마찬가지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고 싶지만,
나는 지금..."



얼마전에 읽은 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완서 선생님이 그랬다. 우리가 책에 밑줄을 그을 때는, 그 문장이 명문이거나 엄청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건, 그때 그당시 독자의 마음이 그 문장과 너무나 똑같아서다. 자신의 마음에 줄을 치고 있는 셈이다.

이 노래를 듣는데, 그런 마음이었다.
강승원, 아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와도 같겠다. 죽지 않는 이상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서른 즈음의 시기, 우리들은 노래에서와 같은 꼭 그런 마음을 품게 된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강승원의 '나는 지금'을 듣는데 그랬다. 그 노래 같았다.

살아 오면서, 난 남아 있는 쪽 보다는 떠나는 쪽이었다. 살면서 떠나는 건 사람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어디에서고 오래 버티지를 못했던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도, 일도, 꿈도, 의지도. 뭔가를 악착같이 붙들었던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그런 일이 한 두번 있었을른지도 모르지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별로 남아 있지 않다면, 그건 '악착'이란 말을 붙이기엔 부족하다.

그리고 이제는 떠나 보내는 것에도 꽤 익숙해졌다고 느낀다. 사람도, 관계도, 일도, 꿈도, 의지도 떠나가면 떠나가는대로 보내며 사는 거지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곤 한다.

이 노래의 부제 '40 Something'이 싫었다.
나만의 것같이 느꼈던 감정을 공공재로 만드는 것 같아서였을 거다. 싫으면서도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는 건, 딱 사십 대 중반이라는 내 나이를 부정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무가치해 보였던, 무의미해 보였던 일이나 자리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비슷한 모습으로 지키고 있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리고 위대해 보인다.

우리가, 내가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란걸 알아서다. 그래서 가끔 그런 것들을, 그런 사람들을 몰래 몰래 훔쳐 본다. 신기하게도 그들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생기곤 한다.
그래서 전해지지도 않을 감사 인사를 하곤 한다. '감사해요, 고마워요'라고. 진심으로.

나도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무엇을 해보겠다는,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그런 마음보다, '늘' 한결같은 모습의, 또는 '늘' 한결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아무래도 어려울까^^;;;










2014년 4월 4일 금요일

사업자 등록

Sole Proprietorship 이란 걸 하고 왔다. 자영업자 등록이라고 해야 하나.

영주권을 받은 후, 학생 한 두명씩 가르치고  간혹 피아노 반주하면서 용돈 벌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적은 액수이지만 가끔씩 플린트 음악원이나 미시건 플린트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돈을 받는 일이 생긱기도 했다. 얼마전부터는 플러싱 (Flushing) 이라는 옆동네 작은 음악학원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가게 되니, 아무래도 등록을 하고 일을 하는 게 마음이 떳떳할 듯 싶었다.

얼마전부터 자영업자 등록 방법을 알아보았다. 지난 주엔 맘을 먹고, 실천에 옮기려 내가 살고 있는 시인,  Grand Blanc 시청도 찾아 갔다. 헌데, 일단 구글에서 찾아간 주소가 잘못되었는지 어쨌든 건물도 못찾고 허탕을 치고 왔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며 다시 사업자 신고를 하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몇일 전, 창밖을 내다 보며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찻집을 갈까 하다, 내친 김에 일단 Grand Blanc 시청을 다시 찾아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번엔 성공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업자 등록을 하러 왔다고 했다.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주소를 달라고 했다. 주소를 보더니,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같은 그랜드 블랭이긴 하지만, 내 주소는 타운십 (Grand Blanc Township) 에 속에 있다고 거길 가라고 했다.

그래서 간 곳이, Grand Blanc Township 시청 건물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경찰서 건물이 하도 번지르르 해서 사실 그곳으로 먼저 들어 갔더랬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다시 차를 몰아 조금 더 가니, 경찰서 건물 뒤편에 평범하게 생긴 시청 건물이 있었다. 아, 이젠 제대로 찾았나보다고 들어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사업자 등록을 하러 왔다고 했다.

왠걸,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얘 뭐래냐...'는 표정으로 날 본다. 그렇게 창구에 있는 사람과 마주 보고 있는데 다른편에 있던 사람이 다가 오더니 여기가 아니고 더 큰 구역의 법원에 있는 Genesee County Clerk 한테 가야 한다고 한다. 결국, 처음 갔던 그랜드 블랭크 시청 직원이 잘못 가르쳐 준거다.

주소를 물어 보니, 자주 다니는 플린트에 위치한 법원이다. 일단 어디를 가야 하는지 알았으니 그걸로 만족하고 돌아왔다. 한국에 간 꼼지가 돌아오면 같이 가던가 말던가 해야지 하면서 말이다. 내가 이걸 왜 굳이 하려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그나마 있던 학생들도 비용 문제로 중도에 그만 두는 상황이니 사업자 등록을 한다고 해도 등록지에 먼지만 앉을 것이 뻔하다.

다시 바람 불고, 비가 더 많이 뿌리던 오늘, 한 번 뽑은 칼, 무우라도 짜르자는 심정으로 다시 충동적으로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니 빗줄기는 좀 더 굵어지고 법원 앞에 도착해 차를 세우니, 플린트 시내엔 무료로 주차할 곳도 많은데 이곳은 1시간에 1달러의 주차비를 받는다. 법원 2층에 자리잡은 Genesee County 서무사 사무실에 가보니 줄이 길었다. 줄 옆으로 마련된 각종 용지들 중에서 자영업자 신고서인듯한 것을 찾아 칸을 채워 적고 줄서서 삼십분쯤 기다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내 용지를 받아 들고, 면허증을 챙기더니, 별 무리 없이 등록이 되는지, 10달러 등록비를 내라고 한다. 그리고는 나에게 영수증과 사업자 면허증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 하라고 한 후, 모든게 잘 된 듯 하자, 오른손을 들고 선서를 시킨다. 뭐에 대한 선서인지, 뭐라고 하는 건지 제대로 알아 듣지를 못해 모르겠지만, 대충 거짓말 안하고 적법하게 사업을 하겠다는 선서인거 같아서, 무조건 "예스" 했다.

자영업자들을 위한 무료 모임을 소개하는 자료도 주면서 모든게 완료되었다며 증서를 건내 주었다.



막상, 내가 적어낸 사업명이 적힌 등록증을 보니 어째 감회가 새롭다. 생각해 보니, 평생 처음 이런걸 등록해 본다. 뭔가 일을 벌여 보고 싶은 마음은 20때부터 많았지만 실제로 내 일을 벌여 본 일이 없었다.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대단해 보이기만 했을 뿐이다.

막상 사업자 등록을 하고 보니, 학생도 없이 무슨 '음악 스튜디오'냐 싶어 사기가 더 저하되는 기분이다. 사업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쁠 수는 없는 상황이니 이대로라도 유지되면 그걸로 일단 감사 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DUNE 1 and 2

한국에서 Dune 1을 본게 아마도 나온 직후. 이유는 모르겠으나, 영화 예고편을 보자마자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라메라는 배우에 빠졌다. 부드럽고 섬세해서 유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배우가 강한 카르스마까지 아우르니 그의 연기에 빠져들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