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5일 토요일

늘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작사/작곡자인 강승원의 음악을 들었다.

음악인들 사이에선 대단히 잘 알려진 사람인 듯한 그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1집 음반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가 들려준 신곡은 '나는 지금 (40 something)'이다.

가사의 시작이 이렇다.

"떠나 보내는데 익숙해졌어.
떠나 가는 것도 마찬가지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고 싶지만,
나는 지금..."



얼마전에 읽은 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완서 선생님이 그랬다. 우리가 책에 밑줄을 그을 때는, 그 문장이 명문이거나 엄청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건, 그때 그당시 독자의 마음이 그 문장과 너무나 똑같아서다. 자신의 마음에 줄을 치고 있는 셈이다.

이 노래를 듣는데, 그런 마음이었다.
강승원, 아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와도 같겠다. 죽지 않는 이상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서른 즈음의 시기, 우리들은 노래에서와 같은 꼭 그런 마음을 품게 된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강승원의 '나는 지금'을 듣는데 그랬다. 그 노래 같았다.

살아 오면서, 난 남아 있는 쪽 보다는 떠나는 쪽이었다. 살면서 떠나는 건 사람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어디에서고 오래 버티지를 못했던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도, 일도, 꿈도, 의지도. 뭔가를 악착같이 붙들었던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그런 일이 한 두번 있었을른지도 모르지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별로 남아 있지 않다면, 그건 '악착'이란 말을 붙이기엔 부족하다.

그리고 이제는 떠나 보내는 것에도 꽤 익숙해졌다고 느낀다. 사람도, 관계도, 일도, 꿈도, 의지도 떠나가면 떠나가는대로 보내며 사는 거지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곤 한다.

이 노래의 부제 '40 Something'이 싫었다.
나만의 것같이 느꼈던 감정을 공공재로 만드는 것 같아서였을 거다. 싫으면서도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는 건, 딱 사십 대 중반이라는 내 나이를 부정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무가치해 보였던, 무의미해 보였던 일이나 자리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비슷한 모습으로 지키고 있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리고 위대해 보인다.

우리가, 내가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란걸 알아서다. 그래서 가끔 그런 것들을, 그런 사람들을 몰래 몰래 훔쳐 본다. 신기하게도 그들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생기곤 한다.
그래서 전해지지도 않을 감사 인사를 하곤 한다. '감사해요, 고마워요'라고. 진심으로.

나도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무엇을 해보겠다는,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그런 마음보다, '늘' 한결같은 모습의, 또는 '늘' 한결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아무래도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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