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를 통해 인간종, 즉 감지 불가능 했던 나 자신의 세포 어딘가에 내재된 아주 비밀스런 역사를 하나 하나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그간에 읽어 왔던 '타인의 고통',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정의를 향해 비틀거리며 가다', '디아스포라의 눈', '코스모스' 등등의 책들을 읽으며 깨닫고 느꼈던 것의 총체를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새해에도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세 개의 책모임을 이어가는 중이다. 새해에도 여전히 악기를 만지고 있다는 것에도 감사한다. 가능한한 매일 몇 곡을 정해 놓고 피아노를 치고 있고 틈나는 대로 조금씩 렌트한 첼로 연습을 하고 있다. 오십을 앞둔 지금도 여전히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나름 건강하고 나름 평온하다. 책과 악기의 힘이다. 올해는 좀 더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대놓고 나를 구속하는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내 식대로 버리고 꾸미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50부터는 이승이 아닌 이승과 저승의 중간 어디쯤에 살고 싶다. 여전히 목적없는 공부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지금까지보다는 덜 흔들리며 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 흔들리며 가더라도 상관없다. 어쩌면 그게 나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르니. 새해에는 미국 시민권을 따게 될 것 같다. 국적이 한국인에서 미국인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변화에 큰 감정이 일렁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현재로선 그저 이곳에 살다가 저곳으로 이사가는 정도의 의미로 다가올 뿐이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은 이곳에서 쓰고 있는 언어에 대해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써야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추가되긴 한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새해라는 건 역시 뭔가 특별하긴 한가보다.
텍사스 칼촌 (College Station, TX) 와서 지내는 중이다. 지난 토요일 꼼지의 텍사스, 칼리지 스테이션 출장에 따라 나섰다. 비행기를 타고 휴스턴에 도착해 토요일 밤은 희진언니네 집에 묵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그 집을 나서, 우리가 10년 전 첫 발을 내딛었고, 힘들었던 미국에서의 첫 두 해를 보냈던, 칼리지 스테이션 (College Station) 에 도착 했다. 호텔로 가기 전, 꼼지가 졸업한 학교인 Texas A & M 을 둘러 보고 사진 찍으며 십 년 전의 그날들을 추억하고 감회에 젖었다. 어제 밤에 칼촌의 바이올린 선생님이자 한양대 선배인 난영 선생님 댁에서, 선화예고 선배인 석현 언니네와 더불어 식사 대접을 받았다. 여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신 그 두 부부가 새삼 반갑고 고마웠다. 대학 선배 난영 선생님 부부 댁에서 오늘은 난영 선생님과 석현언니와 또 따로 만나 함께 점심도 먹고 차도 마셨다. 그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걸 생각하고 느끼고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아들들에 대해서도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하늘이 바다가 미국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잘 보내도록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큰 힘과 조언도 얻었다. 특히, 난영 선생님이 바다 연주 비디오를 보고 평을 해 주셨는데, 바다의 바이올린 교육에 대해 갈등하던 내게 결정적인 도움이 된 것 같다.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바다의 연주에서 아쉽게 느꼈던 점들을 그대로 지적해 주셨다. 다음과 같은 점들이다: "활을 다 쓰지 않는다. 활 스피드의 문제다. 소리가 깔끔하고 명료하지 않고 날라간다. 다음과 같은 고전음악 작품들을 꼭 다 배워야 한다: 바하 콘첼토 1, 2; 헨델 콘첼토 1, 2; 모차르트 3, 4, 5; 바하 무반주 1번 아다지오; 바하 무반주 파르티타 1번; 랄로; 생상; 브루흐 등등" 선생님과 헤어져 호텔방으로 들어 오자 마자, FIM의 바이올린...
곽수은의 가야금, 창작음악프로젝트 The First Performance Collection 한국문화의집KOUS 한국에 온 후 본 첫 공연이다. 하주용의 "Nuevo Sanjo" (한국초연)에 관심이 가서 홍에게 연락, 피곤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연주를 보러 갔다. 김승근의 "가야금독주곡2006"은 전혀 흥미롭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아 기억에 남는다. 대학시절 동료들이 작곡발표회에서 발표하던 곡들 을 들었을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서울대 작곡과 교수라는 사람의 곡인데 이렇게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니 허무하였다. 곽수은의 "나비의 꿈"은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나름의 인상적인 점이 있었다. 왼손의 농현들이 짙게 유지되는 부분에서 깊은 공명과 배음이 남겨진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연주자의 경험에서 담겨진 가야금 특유의 기법과 울림의 방식들이 곡의 후반부 보다는 앞부분에서 좀 더 잘 반영되었다. 뒷부분은 음계들의 나열(음계적 씨퀀스)이 많이 사용되면서 진부하게 들렸다. 김지영의 "When A Leaf Sways..."는 오현 바이올린과 대금이 함께한 앙상블로 좀 기대를 했었는데 새로운 선율이나 구조가 시도된 것은 별로 없는 듯했다. 짜임새에서나 감각적으로나 무덤덤한 편이었다. 이 날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고 기억에 남았던 곡은 하주용의 "Nouve Sanjo"였다. 기대 이상이어서 반가웠다. 무엇보다 작곡가 자신이 경험하고 간직한 산조의 매력을 압축적으로 곡에 담은 것이 느껴졌다. 군더더기를 줄이고 간략하고 감각적인 선율 동기들을 각 악기별로 담아내고, 그것에 다양하고도 전통의 색채와 무게가 넘치는 장단들을 더해감으로써 긴장감을 높였다. 짧은 동기의 장구와 바이올린으로 시작된 도입부부터 흥미로웠다. 바이올린과 대금의 대화속에 소리의 잔향 효과가 이어지면서 집중력을 높였다. 변화되는 장단들이 전통에 깊게 뿌리를 박은 것들이어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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