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친게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먹을 수는 있었다. 모양새도 예상보다 그럴듯했다. 맛도 좋고 바다도 무척 좋아해서 한 세 번쯤 도전했다. 이젠 대충 할 수 있을 것 같다. 빵이 만들어지는게 신기하고 만들고 나면 기분이 좋다. 팔은 조금 아프지만 생각보다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도 같다.
'사피엔스'를 통해 인간종, 즉 감지 불가능 했던 나 자신의 세포 어딘가에 내재된 아주 비밀스런 역사를 하나 하나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그간에 읽어 왔던 '타인의 고통',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정의를 향해 비틀거리며 가다', '디아스포라의 눈', '코스모스' 등등의 책들을 읽으며 깨닫고 느꼈던 것의 총체를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새해에도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세 개의 책모임을 이어가는 중이다. 새해에도 여전히 악기를 만지고 있다는 것에도 감사한다. 가능한한 매일 몇 곡을 정해 놓고 피아노를 치고 있고 틈나는 대로 조금씩 렌트한 첼로 연습을 하고 있다. 오십을 앞둔 지금도 여전히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나름 건강하고 나름 평온하다. 책과 악기의 힘이다. 올해는 좀 더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대놓고 나를 구속하는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내 식대로 버리고 꾸미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50부터는 이승이 아닌 이승과 저승의 중간 어디쯤에 살고 싶다. 여전히 목적없는 공부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지금까지보다는 덜 흔들리며 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 흔들리며 가더라도 상관없다. 어쩌면 그게 나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르니. 새해에는 미국 시민권을 따게 될 것 같다. 국적이 한국인에서 미국인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변화에 큰 감정이 일렁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현재로선 그저 이곳에 살다가 저곳으로 이사가는 정도의 의미로 다가올 뿐이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은 이곳에서 쓰고 있는 언어에 대해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써야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추가되긴 한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새해라는 건 역시 뭔가 특별하긴 한가보다.
텍사스 칼촌 (College Station, TX) 와서 지내는 중이다. 지난 토요일 꼼지의 텍사스, 칼리지 스테이션 출장에 따라 나섰다. 비행기를 타고 휴스턴에 도착해 토요일 밤은 희진언니네 집에 묵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그 집을 나서, 우리가 10년 전 첫 발을 내딛었고, 힘들었던 미국에서의 첫 두 해를 보냈던, 칼리지 스테이션 (College Station) 에 도착 했다. 호텔로 가기 전, 꼼지가 졸업한 학교인 Texas A & M 을 둘러 보고 사진 찍으며 십 년 전의 그날들을 추억하고 감회에 젖었다. 어제 밤에 칼촌의 바이올린 선생님이자 한양대 선배인 난영 선생님 댁에서, 선화예고 선배인 석현 언니네와 더불어 식사 대접을 받았다. 여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신 그 두 부부가 새삼 반갑고 고마웠다. 대학 선배 난영 선생님 부부 댁에서 오늘은 난영 선생님과 석현언니와 또 따로 만나 함께 점심도 먹고 차도 마셨다. 그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걸 생각하고 느끼고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아들들에 대해서도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하늘이 바다가 미국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잘 보내도록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큰 힘과 조언도 얻었다. 특히, 난영 선생님이 바다 연주 비디오를 보고 평을 해 주셨는데, 바다의 바이올린 교육에 대해 갈등하던 내게 결정적인 도움이 된 것 같다.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바다의 연주에서 아쉽게 느꼈던 점들을 그대로 지적해 주셨다. 다음과 같은 점들이다: "활을 다 쓰지 않는다. 활 스피드의 문제다. 소리가 깔끔하고 명료하지 않고 날라간다. 다음과 같은 고전음악 작품들을 꼭 다 배워야 한다: 바하 콘첼토 1, 2; 헨델 콘첼토 1, 2; 모차르트 3, 4, 5; 바하 무반주 1번 아다지오; 바하 무반주 파르티타 1번; 랄로; 생상; 브루흐 등등" 선생님과 헤어져 호텔방으로 들어 오자 마자, FIM의 바이올린...
아무리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살자 해도, 일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마음이 힘들 때는 불쑥 불쑥 찾아 올거다. 요즘이 그런 순간, 하늘이 1차 수술이 3월 5일로 잡혔다. 요 몇일 없던 두통이 생기더니 감정도 자꾸 일렁거렸다. 이럴 때는 물론 일상의 의욕도 확 떨어진다. - 우선, 내 증세를 감지하고 상담자를 찾았다. 다행히 바로 연결이 되었고 내가 찾은 상담자는 한고비를 넘기게 해주었다. 행운이다. 감사하다. 3월 초로 계획해 놓은 Sedona, AZ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 다시 마음이 돌덩이가 되었다. - 이번엔 다리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잠깐이나마 명상을 하니 신경이 쓰이는 다리 상태가 조금은 가벼워진 듯하다. - 닥친 일을 일단 미루고, 즐거워질 수 있는 일을 먼저 하기로 한다.: 라면 먹으며 영화 보기. - 신라면 블랙을 선택해서 먹으며 영화 <Enola>를 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립적인 여성이 주인공으로 호기심과 추리가 이어지는 영화다. 영화의 분위기도 어둡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가볍지도 않다. 보면서 마음에 조금 힘이 생겼다. 긴급 처치를 통해 생긴 힘으로 1층으로 내려왔다. 이제 일과인 피아노를 좀 칠 수 있을 거고, 스프링 일도 좀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긴급 처치 중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렇게 글로 풀어 놓고 기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늘이 수술을 결심하고 곧 실행한다는 것도 기록으로 남긴다. 그리고 Sedona 여행은 취소하지 않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 향후 10년을 바라보며 한국에 거처를 확정하고 미국 거처는 하늘이네랑 합치는 방안도 떠올랐다. 지금의 생각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나, 일단 기록 삼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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