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겨울
5월 여행에 대한 의논도 할겸, 정말 오랜만에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통화한 기묘가 말했다. "여행 가더라도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은 말아. 너도 힘든 날들을 보내고 이제 편하게 사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힘든 일 겪는 애들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 같아." 정확히 이렇게 말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남은 말이라고 해야 맞겠다. 왜 이 말을 했는지, 그 뜻과 의도를 알겠다. 적어도 안다고 생각했다. 근데도, '그걸 꼭 내게 말해줘야 할만큼 내가 철없고 부족해 보였구나,' 마음이 섭섭했다. '왜 그러면 안돼?'란 반항의 맘도 차올랐다. 그리곤 생각해 보았다.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 누군가 내 맘을 알아 줄때 반항심은 작아진다. 누구보다도 내 맘을 알아주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내 맘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을때 반항심은 커진다. 엄마로서 하늘 바다를 대하면서도 늘 느끼는 점이다. 엄마로서 내가 특히 자주 범하는 잘못이기도 하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아이들을 다독거려주고 이해해 주는 단계를 생략해 버리곤 하는 거다. 그리고 그 단계를 생략한 후에 남는 건 잔소리와 야단의 말 뿐이다. 또 너무 가까워서,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아이의 행동을 믿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직 하지도 않은 행동에 대해서 주의를 주거나 성급한 질책을 하기도 한다. 많이 사랑하고 정말 가까우니까 더 잘 이해해 주고, 다독여 줄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일 때가 많다. 상대가 원하는 건, 그리고 반항심을 줄여주고 자신감과 자부심을 북돋는건,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헤아려주는데서 시작되는 건데 말이다. 내가 엄마에 대해 가장 고맙게 생각하고, 엄마에 대해 가장 그리워하는 기억들도 나를 믿어주고 다독여주던 엄마의 말과 응원이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절절히 깨닫는다. '어구, 우리 딸 얼마나 힘들었니' '어구, 우리 딸이니 얼마나 잘하겠니' '어구, 그랬구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