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14의 게시물 표시

길고 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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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여행에 대한 의논도 할겸, 정말 오랜만에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통화한 기묘가 말했다. "여행 가더라도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은 말아. 너도 힘든 날들을 보내고 이제 편하게 사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힘든 일 겪는 애들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 같아." 정확히 이렇게 말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남은 말이라고 해야 맞겠다. 왜 이 말을 했는지, 그 뜻과 의도를 알겠다. 적어도 안다고 생각했다. 근데도, '그걸 꼭 내게 말해줘야 할만큼 내가 철없고 부족해 보였구나,' 마음이 섭섭했다. '왜 그러면 안돼?'란 반항의 맘도 차올랐다. 그리곤 생각해 보았다.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 누군가 내 맘을 알아 줄때 반항심은 작아진다. 누구보다도 내 맘을 알아주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내 맘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을때 반항심은 커진다. 엄마로서 하늘 바다를 대하면서도 늘 느끼는 점이다. 엄마로서 내가 특히 자주 범하는 잘못이기도 하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아이들을 다독거려주고 이해해 주는 단계를 생략해 버리곤 하는 거다. 그리고 그 단계를 생략한 후에 남는 건 잔소리와 야단의 말 뿐이다. 또 너무 가까워서,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아이의 행동을 믿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직 하지도 않은 행동에 대해서 주의를 주거나 성급한 질책을 하기도 한다. 많이 사랑하고 정말 가까우니까 더 잘 이해해 주고, 다독여 줄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일 때가 많다. 상대가 원하는 건, 그리고 반항심을 줄여주고 자신감과 자부심을 북돋는건,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헤아려주는데서 시작되는 건데 말이다. 내가 엄마에 대해 가장 고맙게 생각하고, 엄마에 대해 가장 그리워하는 기억들도 나를 믿어주고 다독여주던 엄마의 말과 응원이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절절히 깨닫는다. '어구, 우리 딸 얼마나 힘들었니' '어구, 우리 딸이니 얼마나 잘하겠니' '어구, 그랬구나. 네...

2014 솔로 앤 앙상블 지역 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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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9-12학년 나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 공식 지역별 악기 경연이 지난 토요일에 열렸다. 음악교육에서 악기 교육과 연주 교육을 대단히 중요시 미국은, 솔로 앤 앙상블 (Solo & Ensemble) 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전역에서 2월에는 지역 대회 (District Solo & Ensemble) 를 3월에는 주 대회 (State Solo & Ensemble) 를 해마다 개최한다. 지역 경연의 독주 부문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피아노 반주자를 반드시 대동해야 한다. 그래서 1월 말 경이 되면 우리 지역, 미시건 3구역의 고등학교 학생들로부터 반주 요청이 온다. 올해에는 총 여섯 학생들이 나에게 반주 요청을 해 왔고, 경연 당일이었던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그들의 일곱개의 경연을 반주 하게 되었다. 학생 수보다 경연 수가 많았던 이유는 한 학생이 하나 이상의 독주 경연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나에게 반주를 부탁한 인도계 학생 애니샤 (Anisha) 가 올해에는 플룻과 바이올린 두 악기에 참여 했다. 작년보다 많은 수의 반주를 하게됐지만, 다행히 하늘이 바다가 이번엔 둘 다 바하의 무반주 곡들을 연주한 바람에 내 도움이 필요 없어서 내가 맡은 다른 학생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바다, 피아노,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545, 2악장 연주 대기실 풍경 모든 경연이 학부모를 비롯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하늘 연주 듣는 중. 하늘, 바흐, 무반주 첼로 1번. 연주 후 심사위원이 조언이나 짧은 가르침을 주고, 1-5급으로 평가를 한다. 바다, 바흐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가보트와 론도. 부분별로 여러명의 심사위원들이 있는데, 하늘 바다는 같은 분이었다. 경연이 있던 주의 날씨는 최악이었다. 특히 학생들 네 다섯 명과 연이어 연습이 잡혀 있던 수요일에는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 결국 낮에 잡혀 있던 UM-Flint (미시건 대학, 플린트) 성악과...

설 안부

난 철학자 강신주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 그 사람이 오늘 힐링캠프에 나왔다. 요즘은 한국 프로그램도 잘 안보는데 - K-pop 스타 외에는 - 꼼지가 보고 있던 걸 보다 보니 끝까지 보게 됐다. 다 보고 나서 두 가지가 나에게 남았다. 하나는 능력이나 성공은 '끈기'의 다른 말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사람은 죽어가는 걸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 약하고 죽어가는 것에 사랑을 주는 법이고, 그때서야 사랑의 실체가 밝혀 진다는 것. 첫번째 끈기에 관한 말은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더 다가왔던 거 같다. 난 바랬다가 이루지 못한 것들이 타고난 능력의 부족이나 한계 때문이라고 여겨 왔다. 하지만 막상 자세히 들여다 보면, 능력보다는 끈기가 없어 원하던 일을 못하게 된 게 다반수였다. 끈기와 부지런함, 아니, 끈기 하나라도 제대로 붙잡고 될때까지 끈질기게 구하고, 준비하고, 노력한다면,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릴지라도, 뭔가 꼭 원하는 일이라면 이룰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는 것, 그러다보면 된다는 걸 내 자신이 좀 더 잘 기억하고 추구했음 싶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감이 없어지고 몸이 처진다는 게 복병이다. 두번째 사랑에 관한 강신주에 말이 인상 깊었다. 사랑, 사랑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나라는 좋은 나라고 사랑을 막고 어렵게 많드는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다.  사회의 구조나 개인적 상황이 '사랑 나누기'를 어렵게 만든다고 사랑을 포기 해야 할까.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계속 해야 한다. 그 사랑이 자꾸 자꾸 퍼져 나가도록 해야 한다. 사랑과 자유를 통해서야만 인간은 오롯이 행복하고 성숙해질 수 있으니까. 강신주의 사랑론에 대해 들으면서 나의 '사랑하기'를 곱씹게 되었다. 설이 와서 아버지께 안부를 전해야 했다. 전해야 하니까 하는 건지 전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딱 반반이라 어느쪽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이 두 가지가 단단히 합쳐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