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철학자 강신주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 그 사람이 오늘 힐링캠프에 나왔다. 요즘은 한국 프로그램도 잘 안보는데 - K-pop 스타 외에는 - 꼼지가 보고 있던 걸 보다 보니 끝까지 보게 됐다.
다 보고 나서 두 가지가 나에게 남았다.
하나는 능력이나 성공은 '끈기'의 다른 말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사람은 죽어가는 걸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 약하고 죽어가는 것에 사랑을 주는 법이고, 그때서야 사랑의 실체가 밝혀 진다는 것.
첫번째 끈기에 관한 말은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더 다가왔던 거 같다.
난 바랬다가 이루지 못한 것들이 타고난 능력의 부족이나 한계 때문이라고 여겨 왔다. 하지만 막상 자세히 들여다 보면, 능력보다는 끈기가 없어 원하던 일을 못하게 된 게 다반수였다. 끈기와 부지런함, 아니, 끈기 하나라도 제대로 붙잡고 될때까지 끈질기게 구하고, 준비하고, 노력한다면,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릴지라도, 뭔가 꼭 원하는 일이라면 이룰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는 것, 그러다보면 된다는 걸 내 자신이 좀 더 잘 기억하고 추구했음 싶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감이 없어지고 몸이 처진다는 게 복병이다.
두번째 사랑에 관한 강신주에 말이 인상 깊었다.
사랑, 사랑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나라는 좋은 나라고 사랑을 막고 어렵게 많드는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다. 사회의 구조나 개인적 상황이 '사랑 나누기'를 어렵게 만든다고 사랑을 포기 해야 할까.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계속 해야 한다. 그 사랑이 자꾸 자꾸 퍼져 나가도록 해야 한다. 사랑과 자유를 통해서야만 인간은 오롯이 행복하고 성숙해질 수 있으니까.
강신주의 사랑론에 대해 들으면서 나의 '사랑하기'를 곱씹게 되었다.
설이 와서 아버지께 안부를 전해야 했다. 전해야 하니까 하는 건지 전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딱 반반이라 어느쪽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이 두 가지가 단단히 합쳐친 하나의 마음으로, 대게 '잘있냐? 나도 잘있다. 됐다. 알았다"로 끝나고 마는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는 접기로 하고, 간단히 이메일을 쓰기로 했다.
보통 이메일을 쓰는 건 내가 가장 편하게 쉽게 잘 할 수 있는 거다. 술술술술~ 별 막힘없이 상대방에게 할말을 하거나 마음을 전하는 편이다. 아버지에게 일없이 안부 편지를 쓰려는데 막막했다. 늘 엄마가 도맡아 하시던 제사나 차례를 십년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집안의 맏이인 아버지 혼자 치르신다. 물론 친척들이 온다고는 한다. 하지만 그 설명절에, 준비를 잘 하시라느니, 누가 오실꺼냐느니, 어디서 지내실꺼냐느니, 오빠는 어떻게 되냐느니.... 등등의 아버지에 대해 내가 궁금한 걸 여쭈어 보는 방향으로 쓰려니 한 자도 쓸 수가없었다. 멀리 있는 무심한 자식이, 그딴 거 물어서는 뭣하며, 그거에 대한 아버지의 답이라는 게 뭐 딱히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나역시도 묻기는 묻되,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인 것들 아닌가 싶어 부질없게 느껴진 탓이다.
문득, 차라리 아버지 입장에선 우리 얘기가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겠지 싶었다. 그쪽으로 풀어 보려니 짧은 편지나마 써지기 시작했다. 단, 감정을 길게, 그리고 깊게 잡고 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단편적으로, 가볍게, 쓰기로 했다. 나의 아버지의 사랑이 현재 딱 그만큼인 정도로만. 과장하지도 말고 확대하지도 말자. 아버지와 간단한 소식을 주고 받고 대화 하면서, 엄마의 영원한 부재 이후에야 맞딱드리게 된 아버지와 나 사이의 사랑이란 걸 조금씩이나마 이어가면 되는 거지 하는 마음인거다.
이런 아버지와의 사연 속에서, 마침, 오늘 강신주씨가 얘기 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법이라고.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시니 내가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듣는 걸 제일 좋아하시겠지. 그러고 보면,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안부가 아니라 내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쓴 건, 잘 한 선택이었군. (하고 좋게 생각 하기로 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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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한국은 설이지요? 잘 보내시기 바랄께요.
한국은 날씨가 좀 풀린것 같다던데 여긴 계속 추위가 이어지고 있어요.
아이들 학교도 몇일씩 쉬고 그랬지요.
날씨가 추운것 외에는 잘 지내고 있어요.
아이들도 하늘 아빠도 다 잘 있고요.
지난주에 하늘아빠 후배가 한 일주일쯤 일때문에 와서 지내다 갔어요.
이번 주말엔 하늘아빠 아는 사람의 아들 둘이 와서 몇일 지내다 갈꺼라네요.
하늘 아빠와 저는 일이 조금 바빠 졌어요.
저는 가르치는 학생들과 피아노 반주 하는일이 조금씩 늘고 있어서 전보다는 조금 분주 하네요.
이곳에서 지내는 횟수가 길어지니 일도 조금씩 느는거 같아요.
하늘이는 자동차를 살 생각에 빠져 있고 바다는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집에서도 늘 축구만 한답니다.
애들이 더 컸어요. 먹는것도 더 많이 먹구요.
설이라 언니도 아버지도 여러가지로 분주 하실것 같네요.
건강 유의 하시고 잘 지내시기 바랄께요.
저희도 건강하게 잘 지내도록 할께요.
미시건에서 막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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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 놓고 다시 보니, 정말 진저리치도록 딱 고만큼이네 하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 안부편지에서 아버지께 들려드리는 나의 소식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다. 아버지와 나 사이의 관계 회복 또는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사랑의 시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사랑의 진행이 이만큼 인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언니에게도 이 이메일을 참고로 보냈다. 언니가 답장을 보내왔다.
언니는 나와 마찬가지로 종교라든가 뭐 그런, 정신적 의지처(? 돌아가신 엄마 외에^^;) 없이 사는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어느것에도 그리 의존적이지 않은). 그저 나처럼, 음악 좋아하고, 영화, 연극 (이런 건 내가 언니한테 받은 영양일테지만) 이런 문화 활동을 강장제 삼아 사는 사람이랄까. 그런 점에선 나와 비슷하지만, 그래도 언니는 나와 다르게 일과 가족,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 등등을 다 챙기며 밝게 산다. '조울증'의 경계에서 늘 간당거리며 사는 나와는 다르다. 왜 다른 건지 가끔 의아하기도 하다. 그 에너지의 원천은 무얼까. 어쨌든 언니는 나에게는 세월이 갈 수록 살아 있는 존경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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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야~
일요일 보이스톡 통화해서 반가웠어. 아버지 계실 때 연결되어 더욱 좋았고... 4일 연휴였는데도 바쁘게 보내서 금방 지나가서 아쉽다. 4일간 내 일정을 적어 보았어.
목요일 :
아침 먹고 치우자 마자 대치동 큰집 가서 음식 장만, 점심/저녁 먹고, 수다 떨고... 와인 마시고... 밤에 잠이 잘 안
와서 설쳤어.
금요일 :
새벽잠 자서, 6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7시에 깨서 차례 준비.
거의 8시30분 ~9시에 차례에 시작하고, 아침 떡국 먹고. 설거지 못하고 친정 행.
11시 넘어 아버지 댁 도착해서, 둘째 작은아버지 내외분, 막내 작은아버지, 범진 내외와 아들(호담 4세), 성진
내외와 아들(호진 6세) 만나 세배하고 인사 나누었다.
2시30분 연희동에서 대치동 3시40분경 대치동 도착하니 막내 혜정 아가씨 가족 와 있어서 모두 함께 둘러 앉아
노래 불렀어.(아주버님 기타 반주에 맞춰... 돌림노래도 하고, 레크레이션 하 듯 손뼉도 돌아가며 ...)
잠시 후 큰시누 명아 아가씨 내외 도착. 저녁 상 차려서 이야기 꽃.
이번에는 아이들도 대화에 함께 참여해서 더욱 좋았어.
시누들 떠나고, 남아서 남은 음식 더 먹고(음식 처리 ㅋㅋ) 조금 치우다가 11시 경 집으로 출발~!
그래미어워드 2014 재방송을 보려고 맘 먹었는데, 아마 하루 전 자정에 이미 재방송 했나 봐. 결국 못 보고...아쉽...
토요일 :
떡국 아점 먹고, 치현은 친구 만나러 나가고, 형부랑 사무실 출근. 3시반까지 일하고, 구로 CGV 무비꼴라쥬 관에서 하는 "인사이드 르윈" 영화 보고, 귀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길래 오는 길에 마트 들어 쪽파, 막걸리 등 사서 집에서 쪽파&김치전 안주에 막걸리. 형부는 양 안차서 나물 넣고 비빔밥도 먹고. 치현이는 친구들이랑 끝 없이 놀고, 영화 보고, 12시 거의 다 되어 귀가!
일요일 :
9시 반 아버지께서 우리집 오셔서 아침 먹은 후, 파주 민들레 병원에 한진이 면회 감.
집 돌아와 점심은 낙지 볶음 해서 아버지와 함께 먹고, 아버지 가신 후, 좀 쉬고 저녁은 지수 환송회 : 돼지고기
목살 로스구이 & 잔치국수
월요일 :
새벽 4시 기상 5시 출발 5시 50분 인천공항 도착해서 지수와 친구, 승연이 배웅. 건강히 잘 다녀 오겠지.
연휴 인데도, 쉴 시간이 별로 없었어. 집안 일도 많이 못했는데...
네가 한국 오게 되면, 범진, 성진 등 사촌 형제들과 시간 잡아 한번 만나자.
성진, 범진에게 네 facebook 알려 줬어. 괜찮지?
이번 철용 일 당하고, 내가 너무 무심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철용인 고모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사춘 동생이다. 몇일전에 뇌출혈로 황망하게 예고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만나지 못해도 연락은 하고 살아야 하는데...
이제는 가끔 연락하고 얼굴도 보고 살아야 할 것 같아.
너 오면 다 같이 한번 만나자 ~열심히 즐겁게 살자~!
우리 자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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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형부와 작은 사업을 함께 운영하기 때문에 매일 매일 출근하고 저녁 늦게야 퇴근하는 생활을 오랫동안 계속해 왔다. 그 사이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고 결혼 한 얼마 후부터 함께 살아온 시어머니도 연세가 많이 드셨다. 시댁에선 지병을 앓다 돌아가신 큰며느리를 대신해, 형제가 많은 형부네 식구들의 맏며느리 역할을 다 맡아 해왔다. 그리고 언니를 둘러싸고 그 '모든 것'이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그런 언니의 2014년 설 연휴 이야기다.
여기에 더해, 중년에 이르도록 자립을 못하고 아픈 남동생 (나의 오빠) 도 이래 저래 챙겨 주어야 한다. 나는 다 놓고, 버리고 온 일들이다. 나는 계속 물러나 있는 일이다. 나 같으면 뛰쳐 나와버렸을 일이다. 언니는 그걸 다하면서도 능동적으로 산다. 삶에 끌려 살지 않고, 끝끝내 삶을 이끌며 산다. 언니가 나에게 엄마고 나에게 최고로 존경하는 사람인 이유다. 그리고 언니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는 이유기도 하다.
미국에서 지나간 2014년 한국 설날 안부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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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을 읽을 때마다 항상 놀란다 너무 솔직해서...자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젊었을땐 남에게 너그럽고 자신에게 모질게 하는 것을 좋다고 생각했었는데나이가 먹으니 자신에게도 너그럽고 싶다😊열심히 살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어
답글삭제고모? 은경? 앙,.... 누가 댓글 남긴 건지 모르겠당. 줄리안가? 누군지 알려 주셔요~
삭제주황이! 무슨 계정할 줄 몰라서 항상 익명!
삭제평소 너답지 않은 분위기로 말해서, 혼동했지^^
삭제항상 내가 정말 이기적이다 하는 생각에 시달려. 그런데 그런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또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변하지도 못하면서, 죄책감, 미안함, 그런걸로 자주 마음이 편치가 않다.
이제 곧 너 보네 ㅎㅎ. 오늘 연주 하나 있고, 내일 하루 종일 Solo & Ensemble 때문에 정신없는데 다음주 수요일 너 볼생각으로 힘내고 있어. 연주 다 잘 끝나면 카톡 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