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의 번역이 좋긴 하지만 읽다 보니 원문이 뭔지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내가 독일어 원서를 읽을 능력은 없어서 영문본이라도 참고를 하기로 했다.
당장 킨들에 영어본을 사서 저장하였다. 서론부터 너무나 매력적이라 영문본을 함께 읽으며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곡해의 가능성을 줄이고 싶다.
한글본이 명료하지 않은 것 같을 때 영문본을 비교하며 가능한한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영문본 확인 후에 한글본을 내식대로 고치게 되면 영문을 달아 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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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예술 사회학의 목적과 한계 (The Scope and Limitations of a Sociology of Art)
*예술작품은 도전이다; 다다를 수 없는 고지
-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순응할 뿐; 우리 자신의 목적과 노력에 의존하여 해석; 우리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 기반한 어떤 의미를 작품 속에 불어 넣는다
- 즉, 우리에게 [지금] 감동을 주는 예술은 그런 점에서 현대예술이 된다. [예술작품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해석이 변하는 것이며, 이 자체가 예술의 속성일 것]
- 우리는 고지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 주위를 선회; 각 세대들마다 다른 관점과 새로운 눈으로 예술작품을 본다; 작품의 양상은 각 당대에 모습을 드러내며 이를 예견하거나 연장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중대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 왜냐하면, 다음 세대에게 어떤 작품의 의미란 이전에 이루어진 해석의 총합체이기 때문이다. (the meaning that a work assumes for a later generation is the result of the whole range of previous interpretations.)
[작품의 중대성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현재 또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가질 때 그것 자체가 이미 이전에 이루어진 모든 해석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라는 것]
*현대는 문화적 업적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는 시대
- 통찰도 얻은 반면, 한계나 결점도 있다.
-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높은 정신적 가치들[작품의 위대성]이 생존, 계급갈등, 경쟁, 명성 등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 측면과 연결되면 언짢아 한다. (There are still people who do not feel quite happy when ...the higher spiritual values are in any way brought into connection with the struggle for existence, class conflict, competition, prestige, and the like.)
- 이런 견해를 여기서 다루면 [시간낭비] 일 것 같고; 다만 이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정신적인 것[작품의 위대성]을 물질적인 것이 배재된 것으로 다룬다면, 결과적으로 특권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Requiring the spiritual to be preserved from all contact with the material frequently turns out to be a way of defending a position of privilege.)
[예술작품에서 물질적 또는 사회적 측면을 배제한 추상적 고귀함만을 원한다면, 그건 결국 예술의 특권 또는 예술을 소유한 특정층의 특권 등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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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저는 "작품의 미적인 환상"이 예술작품의 전부도 아니며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목적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물질, 현실, 사회 등의 존재론적 측면을 배재하는 순수예술론에 대한 비판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예술의 마력에 흠뻑 빠지려면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진정한 예술은.... 우회로를 통하여 우리를 궁극적으로 현실 세계로 인도한다.... 위대한 예술이란 우리에게 삶을 해석해 준다. 이 해석으로 우리는 사물의 무질서한 상태에 더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삶으로부터 더 설득력 있고 신뢰할 만한 의미를 [움켜쥘]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최종적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분명 읽었겠고, 예전에도 지금처럼 공감했을 거다. 오늘도 또 공감했다는 사실이 기쁜 거다.
하우저의 생각을 따르면, '예술은 삶의 도구'인 거다.
"문화는 사회를 보호하는 데 이바지한다" (Culture serves to protect society.)
즉, 문화의 하나로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전제한다.
그리고 예술가는 "그의 모든 포부와 전망과 더불어 생계 전체가 하나의 사회집단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의도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그의 고객과 후원인의 대변자가 되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서 핵심적인 변수는 '고객'과 '후원인'의 성격이다.
또한 정말 멋지게도 '우리는 우리 사고 안의 편향성과 끊임없이 싸우며, 비판적 태도를 통해 우리가 가진 견해의 일방성과 오류를 교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던진다.
서론의 제목처럼, 하우저는 예술의 목적 및 그 한계에 대해 다각적으로, 또 처절하게 다 까발리고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 같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싸우겠다는 것처럼.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삶과 죽음, 사회적 동물)가 결국 예술의 한계를 만든다. 그럼에도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예술작품이 멋진 것은 그 한계를 계속 깨보려 하는 그 시도(시지프스와 같은) 때문인 거다.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라는 그 말이 보잘 것 없이 들릴 수 있겠으나 그 한계가 결국 "문화사회학에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정당성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