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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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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서 아이들이 죽어 가는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분명히 살아 있을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이역만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그 날들도, 저 물살처럼 부질없이 흘러가고 있다. 하루 하루 말을 잃어가는 기분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때 난 정말 멘붕에 빠졌더랬다. 그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다독거리는데 일년도 넘게 걸렸다. 이제서야 겨우 생각을 추스리면서, 사람이란게 희망없인 살 수 없는지라, 최소한 사람 죽는 일만없이, 사람들 크게 괴롭히는 일만 없이 임기를 끝내주기를 바라자고 마음 먹는 중이었다. 그 마음조차 어리석었다는 것을 지금 정부는 또박 또박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정부를 탄생시킨 사람들이 결국 잠재적 살인자였다는 것을 세월호는 또박 또박 이야기해 주고 있다. 나는 기독교의 신인 하나님이  자식을 바쳐야만, 또는 그 시늉이라도 해야만, 말을 들어준다는데 치가 떨렸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은 자식들을 떼로 물속에 수장하고도 신에게서 철저히 외면 당하고만 있는 것 같은 형상이다. 아이들의 떼죽음을 목격하면서도 '그래서 어쩌라구'라는 말을 하고,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서도 반성은 커녕 큰소리를 치면서 자기 밥그릇에 흙이 튈까 걱정하는 이들로 판을 친다. 기적이란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의 노력과 힘으로 생겨나는 것일텐데, 단 한 명의 생존자를 구하는 그 작은 기적조차 이루지 못했다는 건, 세월호의 아이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턱없이 적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정부가 힘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이, 비판이 나오는 거다. 정당하게 옳은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말조차 듣지 않는 사회,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막고, 감시하고, 불이익을 주고, 잡아가는 사회, 이 사회, 이 정부를 어떻게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2014년이다. 이 숫자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진다. 1980년 광주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사회를 보면서 어떻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지 않...

4월의 밤: 봄 밤이라 하고 싶은데, 다가 올 한 주는 다시 영하라네...

꼼지와 함께 오랜만에 맘 먹고 술 한잔 했다. 꼼지는 김어준의 KFC를 보고, 난 KFC의 지네끼리 의식에 짜증이 나서 괜히 꼼지에게 투덜대다, 한국 음악 방송을 컴퓨터에서 틀었다. 그것도 조금 보다 짜증이 나서 그만 두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머릿속은 아우성인데 정작 쓸 수 있는 건 한 소설 열 편정도의 첫 문장들뿐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나오는 건 찡그린 얼굴에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응 없는, 나만의 아우성 뿐이다. 그리곤 10분 후 반성, 하늘 바다에게 다시 웃음 짓기. 꼼지에겐 좋은 아내가 되고 싶은데 두부 김치 술안주 하나 달랑 해 놓고선 계속 꼼지가 보는 정치 방송들에 대해 궁시렁 거리기.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쯤, 함께 술 한잔 편안하게 기울이고, 한국 방송 이것 저것 인터넷에서 틀어 보면서 딴지도 걸고, 시비도 걸고, 내 맘 내키는 대로 지껄여 볼 수 있다는 걸 행복하다 여긴다. 진심이다. 꼼지는 맥주 두 잔 먹고 지쳐 가버리고, 남은 나는 인터넷을 여기 저기 돌아 다니다가 결국, 내 블로그에 안착하여, 페북에나 올릴 글을 지껄여 본다. 한동안, 술먹고 나면, 카톡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심지어 시어머님께도!!! 으악!!!) 에게 전화를 걸어, 돼도 않는 술주정을 해대어 다음날 기절할 지경이었고, 그 이후론, 카톡으로 메시지 (심지어 이건용 선생님에게까지!!! 으악!!!) 를 보내어 다음날 아침 그걸 다 지워 버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후론, 진짜 결심, 술 먹고, 전화하거나 카톡하지 않기! 하면 죽인다! 차라리, 아무도 오지 않는 내 블로그에 지껄이는 편이 제일 안전할듯...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라도 지껄이지 않으면 병원에 갈 신세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여기선 술에 취에 맘껏 지껄일 대상이 없으니. 지껄여 내버려야 할 쓰레기들이 잔뜩 몸 안에 쌓이면 썩어가는 쓰레기 냄새와 개스에 질식하여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거라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늘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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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작사/작곡자인 강승원의 음악을 들었다. 음악인들 사이에선 대단히 잘 알려진 사람인 듯한 그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1집 음반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가 들려준 신곡은 '나는 지금 (40 something)'이다. 가사의 시작이 이렇다. "떠나 보내는데 익숙해졌어. 떠나 가는 것도 마찬가지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고 싶지만, 나는 지금..." 얼마전에 읽은 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완서 선생님이 그랬다. 우리가 책에 밑줄을 그을 때는, 그 문장이 명문이거나 엄청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건, 그때 그당시 독자의 마음이 그 문장과 너무나 똑같아서다. 자신의 마음에 줄을 치고 있는 셈이다. 이 노래를 듣는데, 그런 마음이었다. 강승원, 아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와도 같겠다. 죽지 않는 이상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서른 즈음의 시기, 우리들은 노래에서와 같은 꼭 그런 마음을 품게 된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강승원의 '나는 지금'을 듣는데 그랬다. 그 노래 같았다. 살아 오면서, 난 남아 있는 쪽 보다는 떠나는 쪽이었다. 살면서 떠나는 건 사람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어디에서고 오래 버티지를 못했던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도, 일도, 꿈도, 의지도. 뭔가를 악착같이 붙들었던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그런 일이 한 두번 있었을른지도 모르지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별로 남아 있지 않다면, 그건 '악착'이란 말을 붙이기엔 부족하다. 그리고 이제는 떠나 보내는 것에도 꽤 익숙해졌다고 느낀다. 사람도, 관계도, 일도, 꿈도, 의지도 떠나가면 떠나가는대로 보내며 사는 거지라고 ...

사업자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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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e Proprietorship 이란 걸 하고 왔다. 자영업자 등록이라고 해야 하나. 영주권을 받은 후, 학생 한 두명씩 가르치고  간혹 피아노 반주하면서 용돈 벌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적은 액수이지만 가끔씩 플린트 음악원이나 미시건 플린트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돈을 받는 일이 생긱기도 했다. 얼마전부터는 플러싱 (Flushing) 이라는 옆동네 작은 음악학원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가게 되니, 아무래도 등록을 하고 일을 하는 게 마음이 떳떳할 듯 싶었다. 얼마전부터 자영업자 등록 방법을 알아보았다. 지난 주엔 맘을 먹고, 실천에 옮기려 내가 살고 있는 시인,  Grand Blanc 시청도 찾아 갔다. 헌데, 일단 구글에서 찾아간 주소가 잘못되었는지 어쨌든 건물도 못찾고 허탕을 치고 왔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며 다시 사업자 신고를 하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몇일 전, 창밖을 내다 보며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찻집을 갈까 하다, 내친 김에 일단 Grand Blanc 시청을 다시 찾아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번엔 성공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업자 등록을 하러 왔다고 했다.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주소를 달라고 했다. 주소를 보더니,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같은 그랜드 블랭이긴 하지만, 내 주소는 타운십 (Grand Blanc Township) 에 속에 있다고 거길 가라고 했다. 그래서 간 곳이, Grand Blanc Township 시청 건물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경찰서 건물이 하도 번지르르 해서 사실 그곳으로 먼저 들어 갔더랬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다시 차를 몰아 조금 더 가니, 경찰서 건물 뒤편에 평범하게 생긴 시청 건물이 있었다. 아, 이젠 제대로 찾았나보다고 들어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사업자 등록을 하러 왔다고 했다. 왠걸,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얘 뭐래냐...'는 표정으로 ...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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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간의 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어제 밤 11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무사 귀환. 그 사이 이백여명의 승객을 실은 말레이지아 비행기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있었다. 꼼지와 나의 무사귀환이나, 그간 집을 잘 지켜낸 하늘 바다와의 밤늦은 포옹은, 더이상 상투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름도 모르는 그들의 불행에 내 행복을 비교해서만은 아니다. 아이들도 우리도 지난 4박 5일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하늘이는 지난 금요일 자동차 면허를 따서 엄마 아빠도 없이 동생을 태우고 동네를 누빈 지난 몇일이다. 그애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시간이 될테다. 아이들은 청소년기의 정신적 성장으로 꼼지와 나는 중년기의 인간적 성숙으로, 이처럼 더 성숙해진 우리 네 식구들의 포옹, 절대 상투적이거나 형식적일 수 없었다. 심지어 고양이 허비도 그간 더 살이 올라 펑퍼짐해진 것이 걱정스럽기 보단, 한층 숙성해졌나 싶어 미소가 지어졌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프랑스의 앙제라는 작은 도시를 다녀온 감상이 8시간의 비행과 5시간여의 시카고-미시건 자동차 여독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흥분과 생기로 집안일을 시작 한다. 내 몸에 받아온 프랑스 앙제의 기를 우리집에 풀어 놓을 준비가 된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니, 늘 똑같던 우리집서 보내는 일상이 말그대로 또다른 여행처럼 느껴져 없던 힘도 막 솟는 것 같다. 집에서 맞는 아침이, 근 십년 살았다고 미국 우리집에서 친정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매력적으로는 들려도 완전 까막귀에 벙어리였던 불어에 비하자니, 아침 뉴스에서 들리는 영어는 고맙기까지 하다. 미시건의 온도와 공기도 조금은 온화해진 것 같아, 창문의 커텐들도 해가 미처 밝기전에 열어 젖혔다. 아이들은 아쉬운 짧은 대화를 남기고 학교로 갔다. 싱크대 주변의 시커멓게 탄 후라이팬과 쌓여 있는 설겆이를 하고 꼼지의 도시락을 싼 후 커피를 올리고 사과와 요거트로 아침을 먹고 있다. 이번주는 다시 바쁜 주다. 이미 두 학생에게서...

길고 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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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여행에 대한 의논도 할겸, 정말 오랜만에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통화한 기묘가 말했다. "여행 가더라도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은 말아. 너도 힘든 날들을 보내고 이제 편하게 사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힘든 일 겪는 애들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 같아." 정확히 이렇게 말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남은 말이라고 해야 맞겠다. 왜 이 말을 했는지, 그 뜻과 의도를 알겠다. 적어도 안다고 생각했다. 근데도, '그걸 꼭 내게 말해줘야 할만큼 내가 철없고 부족해 보였구나,' 마음이 섭섭했다. '왜 그러면 안돼?'란 반항의 맘도 차올랐다. 그리곤 생각해 보았다.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 누군가 내 맘을 알아 줄때 반항심은 작아진다. 누구보다도 내 맘을 알아주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내 맘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을때 반항심은 커진다. 엄마로서 하늘 바다를 대하면서도 늘 느끼는 점이다. 엄마로서 내가 특히 자주 범하는 잘못이기도 하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아이들을 다독거려주고 이해해 주는 단계를 생략해 버리곤 하는 거다. 그리고 그 단계를 생략한 후에 남는 건 잔소리와 야단의 말 뿐이다. 또 너무 가까워서,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아이의 행동을 믿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직 하지도 않은 행동에 대해서 주의를 주거나 성급한 질책을 하기도 한다. 많이 사랑하고 정말 가까우니까 더 잘 이해해 주고, 다독여 줄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일 때가 많다. 상대가 원하는 건, 그리고 반항심을 줄여주고 자신감과 자부심을 북돋는건,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헤아려주는데서 시작되는 건데 말이다. 내가 엄마에 대해 가장 고맙게 생각하고, 엄마에 대해 가장 그리워하는 기억들도 나를 믿어주고 다독여주던 엄마의 말과 응원이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절절히 깨닫는다. '어구, 우리 딸 얼마나 힘들었니' '어구, 우리 딸이니 얼마나 잘하겠니' '어구, 그랬구나. 네...

2014 솔로 앤 앙상블 지역 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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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9-12학년 나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 공식 지역별 악기 경연이 지난 토요일에 열렸다. 음악교육에서 악기 교육과 연주 교육을 대단히 중요시 미국은, 솔로 앤 앙상블 (Solo & Ensemble) 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전역에서 2월에는 지역 대회 (District Solo & Ensemble) 를 3월에는 주 대회 (State Solo & Ensemble) 를 해마다 개최한다. 지역 경연의 독주 부문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피아노 반주자를 반드시 대동해야 한다. 그래서 1월 말 경이 되면 우리 지역, 미시건 3구역의 고등학교 학생들로부터 반주 요청이 온다. 올해에는 총 여섯 학생들이 나에게 반주 요청을 해 왔고, 경연 당일이었던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그들의 일곱개의 경연을 반주 하게 되었다. 학생 수보다 경연 수가 많았던 이유는 한 학생이 하나 이상의 독주 경연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나에게 반주를 부탁한 인도계 학생 애니샤 (Anisha) 가 올해에는 플룻과 바이올린 두 악기에 참여 했다. 작년보다 많은 수의 반주를 하게됐지만, 다행히 하늘이 바다가 이번엔 둘 다 바하의 무반주 곡들을 연주한 바람에 내 도움이 필요 없어서 내가 맡은 다른 학생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바다, 피아노,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545, 2악장 연주 대기실 풍경 모든 경연이 학부모를 비롯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하늘 연주 듣는 중. 하늘, 바흐, 무반주 첼로 1번. 연주 후 심사위원이 조언이나 짧은 가르침을 주고, 1-5급으로 평가를 한다. 바다, 바흐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가보트와 론도. 부분별로 여러명의 심사위원들이 있는데, 하늘 바다는 같은 분이었다. 경연이 있던 주의 날씨는 최악이었다. 특히 학생들 네 다섯 명과 연이어 연습이 잡혀 있던 수요일에는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 결국 낮에 잡혀 있던 UM-Flint (미시건 대학, 플린트) 성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