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HINKO, Minji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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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화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다. 킨들에 받아서 영문으로 완독 했다. 4세대에 걸친 이민자 가족의 역사가 남의 일로 읽히지 않았다. 내 부모와 나, 내 자식들, 그리고 미래의 내 손주들의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물론 시대와 무대는 다르지만, 긴 역사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 살이의 양상을 한 폭의 그림을 바라보듯 읽으면서 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도 생각해 보게 됐다. 주인공 여인은 부모의 귀한 딸로 태어나 자라고 자신에게 주어진 한 생애를 열심으로 살아낸다. 그녀가 살아 낸 삶의 결과는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과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고, 순수하고 순전하게 그녀의 삶을 살려 냈던 남편과 그녀의 모든 것과 같았던 큰 아들은 가슴 아픈 죽음을 맞이한다. 그 외에도 남편 형의 고통과 죽음, 둘째 아들의 이야기, 또 그 자식이 이어가는 이야기들은 공평하지 않고 비례하지 않는 인간 생의 긴 서사를 하나씩 들려주는 듯하다. 지금 내가 전쟁의 와중에 놓이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생존의 절체절명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헤쳐가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건 어떤 걸까를 생각하기도 했다. 결국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느냐도 답이 있는 것은 아닐터. 계획을 하거나 열심을 다한다고 해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결국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도, 긴 서사 속의 작은 이야기 한토막으로 남을 것이고, 그 이야기가 어떠해야 한다거나, 또는 어떤 이유로 의미 또는 무의미 했다거나 말할 건 없을 일이다. 그저 산다는 거 자체가 나에게 존재하고 있을 뿐.

오더 메이드 살인 클럽, 츠지무라 미즈키

살인이라는 말이 거슬리지만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수상작 이라 길래 사 본 책이다. 한참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자 들추어 봤다. 일종의 성장 소설. 중학교 여학생과 남학생이 학교 생활의 부적응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살인을 계획한다는 황당하고 끔찍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읽으면서 이런 괴기한 내용을 학생들이 읽어도 될까, 이런 내용을 접하면서 아이들은 어떤 걸 배우게 될까 하는 노인네 같은 생각이 든 게 사실이다. 그래도 마지막엔 이들이 성장기를 통과하여 죽지 않고 살아서 청년이 되고, 청년이 된 그들은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걸로 끝을 맺는다. 어찌 보면 잔혹함과 교과서적 성장기를 억지로 짜 맞춘듯한 느낌도 든다. 결말이 궁금해서 속도감 있게 읽히긴 하지만, 누구에게 특별히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사실, 이 책은 성장기에 있던 하늘이에게 선물로 사다 주었던 책이다. 하늘이가 읽지 않았던 것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이렇듯 일본 소설은 너무 극단적인 측면을 보여서 많이 읽지 않게 되는 듯하다.

Schumann, Piano Quartet E flat Major, Op 47.

3악장이 너무 아름다워서 듣게 되었다. 슈만의 실내악 작품을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슈만의 특성은 가끔 그 종잡을 수 없는 진행과 감성이다. 논리적이지도 충분히 감성적이지도 않은 그 묘한 어디쯤에 놓여있다. 그런데 그 안에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만큼의 특이한 아름다움이나 번뜩이는 감성이 있다. 그것이 슈만의 작품을 빛나게 하고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듯하다. 이 곡도 역시 그렇다. 모든 악장에 이런 두 가지 특이한 점을 느끼게 된다. 귀를 붙드는 인상적인 동기구, 생각지 못한 진행과 화음들이 각 악장에서 펼쳐져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빠져드는 순간 순간이 이어지면서 끝까지 듣게 된다. 특히 3악장 Andante는 상상 이상의 아름다운 선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너무나 아름답고 인상적이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첼로로 시작해 바이올린에 이어 앙상블로 이어지는 주제가 비올라를 통해 대위 선율과 얽히며 펼쳐지는 부분에서는 가슴에 절절해진다. 슈만의 이 곡을 최근 듣게 되면서, 다른 실내악 곡에도 관심을 가지며 듣고 있는 중이다. 실내악의 매력을 새롭게 깨달으면서 바이올린이나 첼로도 계속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 1악장 Sostenuto assai - Allegro ma non tropo 2악장 Scherzo - Molto vivace 3악장 Andante cantabile 4악장 Finale Vivace

그린랜드

영화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봤다. 지구에 혜성이 폭탄처럼 떨어지는 영화다. 놀랍게도 실화라고 한다. 한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선택된 사람들의 피신처, 그린랜드를 향해 가는 줄거리를 가졌는데, 줄거리를 따라 긴장이 계속 높아진다. 함께 가던 가족은, 아이의 약 때문에 아빠와 헤어지고, 남았던 아이와 엄마는, 도움을 주던 사람들의 배신으로 또 헤어지게 된다. 아이와 부인을 처절하게 찾아 가던 아빠 역시 생존을 위해 인간성을 버려가는 사람들을 피하다가 살인도 저지른다. 결국 다시 만난 가족은 영화의 막바지에 살아 남는데, 줄거리나 연출은 B급 영화.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든 건, 역시 사람들의 배신이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상황 속에서 괴물이 되어 가는 가... 하는 의문 같은 것.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지구 멸망의 순간에 영화 "Don't Look Up"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죽음을 선택할까, 아니면 목숨을 내놓은 도전을 계속할까... 그리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해하는 그런 선택을 하게 될까...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긴 하지만, 답을 찾아본 적은 없다. 살면서 마주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극단의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이 영화라서 B급 영화든 재미없는 영화든 시작을 하면 끝까지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브로커

영화의 줄거리나 감독의 연출보다는 송강호, 아이유, 배두나가 궁금해서 보았다. 개인적으로 배두나의 연기가 가장 인상에 남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말 본인인 듯한 연기였고 그러면서도 아주 세밀하고 깊이가 느껴졌다. 배두나에게 찰떡인 영화의 인물을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배두나의 독보적 연기로 해석하고 표현해 준 것 같았다. 이렇게 일견 평범해 보이는 연기가 특별하게 다가왔던 적인 있나 싶을 정도였다. 이 영화를 다시 본다고 해도 배두나의 연기를 다시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영화는 기대보다 크게 재미있거나 새롭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너무 덤덤하고, 그렇다고 크게 새로운 시각이 있거나 아주 따뜻하지도 않아서, 그냥 밋밋하게 느껴졌을 정도다. 한국 작품과 일본 작품의 차이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뭔가 한국 작품은 조금 더 진한 맛이란 게 있는 반면, 일본 작품은 닝닝하고 느끼하면서 멍한 것 같다. 일본 만화, 영화 등 여러 일본 문화에 빠진 사람들이 많은데, 생각해보면 나는 일본의 것에 놀라울 정도의 감동을 받거나 빠진 적은 없었던 것도 같고. 일본 감독이 한국 배우들을 데리고 만든 한국 영화, 브로커. 그래도 꼭 보고 싶긴 한 영화였다.

범죄도시2

 범죄도시 1과 2를 다 보게 된 셈이다. 잔인하지만 시원한 응징이 있어서 아주 영화적인 영화라서 적극적으로 봤다. 마동석이라는 인물을 마음껏 활용해서 장점이 된 영화이고, 이른바 빌런이라는 악역이 1편과 2편 모두 흥미롭게 그려지고 인물설정과 그 해당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도 훌륭한 연기들을 해줘서 영화적 완성도가 올라갔다. 잔인한 영화를 보는 게 여전히 편하지 않지만, 두 편 모두 재미있게 보았다. 역시 악은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되면 좋겠다는 마음...

(공연후기)"더블빌": 신선 + 몽유도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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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4. 21 - 24. 국립극장 달오름 국립무용단(예술감독 손인영) 더블빌 - 신선(안무 고블린 파티, 음악 지경민) - 몽유도원무(안무 차진엽, 음악 haihm 심은용) 1. 전통무의 현대화 세계화를 표방하는 국립무용단이 "기동성을 위해 사이즈를 줄이고, '한국적'이라는 대표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세계적 시각에서 밀리지 않는 예술성을 담보"한다는 목표아래 펼친 무용 공연이다. "신선"은 무용수들이 마이크로 해설도 하고 찻상과 술잔 같은 소품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듯 다양한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춤에서도 전통 춤선, 팝핀, 아트로바틱 같은 여러 몸짓을 혼합하였고 무용수들 사이에서도 같은 듯 다른 듯한, 서로 미세하게 어긋나면서도 한편으론 통일성을 잃지 않는 안무를 연출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신선과 술놀음의 연결이 개인적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오진 않았다. 게다가 술놀음에서 비롯되는 많은 몸의 표현들이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많아 그저 술취한 모습의 반영 정도로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신선의 인간화를 그린 것은 아니었을테니, 세속의 술놀음을 연상시키는 몸짓들을 쓸거였다면 뭔가 더 확실한 의도나 궁극적 지향점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예를 들자면, (술)놀음을 넘어 자유, 해방, 허무(무, 부질없음), 또는 더 나아가 어떤 상상의 새로운 '신선의 놀음'을 추구했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이런 추구를 하지 않고 그저 다양한 소재와 움직임을 붙이고 나열하면서 보여주는 것이 혹시 새세대의 특징이나 유행인가하는 의문도 들었다. 어쨋든, 나에겐, 내용적으로 '신선놀음=술놀음"이라는 인상으로 끝난 무대 같아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동은 없고 껍질만 남긴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2. 더블빌의 두 번째 무대였던 <몽유도원도>는 이 공연후기를 쓰게 된 이유다. 안무, 미디어아트, 내용, 음악, 의상까지 신선하면서도 의도와 표현이 잘 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