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윌리엄

윌리엄이 돌아 왔다.


윌리엄 (William) 은 65살의 시카고 태생의 흑인 아저씨다. 취미로 연주하는 더블 베이스를 두 개나 가지고 있을 만큼 음악을 사랑한다. 커다란 체구에도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면이 많고 거리감이 없을 뿐 아니라, 솔직하면서도 친절한 성격을 가졌다. 한 이년 전쯤 플린트 음악학교 어른 현악 합주반에서 우린 금방 친구가 됐다. 그 이후로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만나며 함께 연습도 하고 수다도 떨었다.

작년 언제인가부터는 우리집에 일주일에 두번씩 렛슨을 왔다. 처음엔 내게 음악이론을 배우러 왔는데 그 이후로는 내가 그의 피아노 선생님이자 더블 베이스 연습 선생이 되었다. 레슨요일이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정확한 시간에 우리집 문을 두드렸다. 늘 내 이름을 "Hyun Soo~"하고 또박 또박 정확히 발음하는 그는 렛슨이 끝나고 돌아갈 때면, "Thank you, Hyun Soo~" 하며 고개 숙여 한국식 인사를 붙이곤 했다.

그러던 윌리엄이 몇 달전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나에게 렛슨을 그만 오겠다며 발길을 끊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 하기도 하고 걱정도 돼서 몇 번의 이메일도 보내 보고 몇 번 점심 약속을 제안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윌리엄은 요지부동 답이 없었다.

얼마 전, 윌리엄이 자주 찾는 플린트의 현악기 상에 들릴 일이 생겼다. 그김에 주인이자 윌리엄의 친구이기도 한 마크 (Mark) 에게 윌리엄의 소식을 물었다. 그는 윌리엄이 암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오로지 악기 관련 일이 있을 때만 잠깐 자기를 찾아 온다고 했다. 그 동안 여러가지 검사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단다.

고민이 됐다. 마크에게 소식 들었다면서 이메일이라도 보내야 할까, 편지에 뭐라 말을 해야 할까 막막했다. 집에 직접 찾아 가는게 더 나으려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몇일 지났는데 윌리엄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다시 렛슨을 오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언제라도 오라 했다. 윌리엄 시간은 여전히 비어 놓았으니 대 환영이라고 했다.

다시 본 윌리엄은 그대로였다. 그는 그대로인데 난 마음이 아팠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따뜻한 우정의 포옹을 나누었다. 윌리엄은 한참을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풀어 놓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전립선 암 진단을 받고서 충격을 받은지 얼마 안되 정원일을 하다 오른쪽 발목이 부러져 깁스를 했다고 했다. 그 와중에 백 살이 되신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셨다. 급기야는 지난주 화요일에 백 세의 나이로 운명을 다하셔서 금요일엔 장례식이 열린 시카고에 다녀 왔다고 했다. 그 모든 일이 지난 몇 달 새에 한꺼번에 닥쳤다고 했다.

내가 사십 중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담담히 윌리엄의 말을 받아들이진 못했을지도 모른다. 문득 나를 다시 찾아온 이유에 대해, 윌리엄은 백살 노모께서 늘 말씀하셨다는 "just live each day..." 라는 말을 지팡이 삼아 음악을 하루 하루 계속 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윌리엄은 10월 말에 앤아버 미시건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수술 후에서는 여러 치료 때문에 다시 렛슨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래도 오늘의 렛슨을 즐겁게 하기로 했다. 그가 앞으로 몇 번이나 나와 함께 음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날에게 대해 생각하고 걱정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참이다. 윌리엄이나 나나, 그저 오늘 하루, 다음 한 번, 그가 오는 날, 그 날만을 충분히 맘껏 행복해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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