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식의 글쓰기를 하고 싶은가. 예전 블로그 글도 읽어 보고 이것 저것 다른 블로그도 방문해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미국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어로 글쓰는게 전같지만은 않다는 걸 느낀다. 몇 문장 쓰는데도 전에 없이 주저하는 시간이 늘어 나고 편하게 편하게 쓰자고 해도 글이 자꾸 꼬이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쓰고 싶은 글 투에 대해서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일단은 짧고 간결하게 쓰고 싶다.
물론 짧은 문장만이 잘 읽히고 재미있는건 아니다. 사실 나는 유려하되 장황함이 없는 긴 문장을 좋아한 편이다. 그동안 내가 써온 글도 보면 대체로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헌데, 글쓰기를 업으로 하지 않는 이상, 긴 문장을 쓰다보면 주어와 서술어가 흐려지고 내용의 앞 뒤를 매끄럽게 연결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든다.긴 문장을 써 놓고 고치고 또 고치다 보면 블로그에 별 것도 아닌 글 하나 쓰는데 귀한 하루를 소비 하거나, 글 쓰는 일이 부담이 되어 간단한 기록조차 미루게 될 때가 생긴다
편한 말투로 쓰고 싶다.
괜스리 많이 배운 투를 내면서 어려운 문어체를 쓰는 건 이제 나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전문적인 내용의 글을 쓸 일도 없어진 만큼 솔직한 나만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 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직설적이거나 상투적인 글을 바라는 건 아니다. 내용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도에 넘치게 고상한 척 하지 않는 정도면 좋을 것 같다.
특정한 주제로 상세한 관찰을 담는 글을 쓰고 싶다.
블로그에 글쓰는 일이 드물어지다 보니 여러가지 이야기를 글 하나에 한꺼번에 담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일상에 큰 굴곡이 없는 나같은 아줌마에게서 나올 수 있는 글은 소수의 재미없는 내용에 국한되고 만다. 예를 들면, '일어나, 밥하고, 빨래'하고, '애들과 남편 챙겨 주'고, 좀 '쉬고', '쇼핑'하고, 가끔 '여행'하는 이야기를 크게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 현상적인 기록보다는 나만의 생각이나 느낌, 또는 착상, 깨달음, 반성과 같은 내용이 훨씬 더 가치있고 성숙한 글쓰기가 아닐까 한다. 같은 책이나 음악, 영화 같은 것을 반복해서 언급 하게 되더라도 다른 주제,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글이라면 꺼리지 않을 작정이다.
예전에는,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종국에 가서 어떤 결과를 맺을 수 있을 꺼라 기대했다. 구체적인 목적이 없는데도 무언가 목적이 있는 글쓰기라고 혼자 박박 우기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새로 블로그를 정리하고 다시 잡다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는 그런 생각을 온전히 놓았다.
벌써 재 작년이 되었는데, 언니가 미국 우리집을 방문을 했을 때다. 언제라도 한국으로 내뺄 것 같이 불안해만 보이는 나를 마주한 언니가 소리쳤다.
"너, 아무 것도 아니야. 너 그렇게 훌륭한 사람 아니야. 너 뭐가 크게 될 사람도 아니야. 그런 생각은 버려. 넌 그냥 엄마야. 그냥 아내야. 그게 너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역설적이게도, '넌 아무것도 아니야'란 언니의 잔혹한 그 말 이후,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피아노를 치고, 반주를 하고,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슴 저 밑바닥까지 행복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백일몽과 현실몽의 균형이 이제서야 맞추어진걸까. 내 인생이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부담에서 벗어난 해방감이나 후련함 같은 거였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이젠 정말 가족이란 이름으로 내 아이들과 남편과 더불어 지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에 하루 하루가 더 절실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연유에서건, 지금 나의 두 발은 그 어느때보다도 굳게 현실이란 땅을 딛고 선 것 같다. 그러므로 내 글도 망상과 공상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 기댄 살붙이, 피붙이로 숙성해 가려니 믿어 본다.
2013년 1월 4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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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삭제아항, 요기다 쓰면 댓글에 답글이 되는구나. 주말 즐겁게 보내~
삭제그래 열심히 써볼테니 자주 놀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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