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4일 목요일

그리움

음울한 겨울비가 오락 가락 하는 늦은 오후다. 날씨 때문인지 기묘네 가족 생각이 유난히 났다. 아이들을 오케스트라 연습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플린트 미술관에 들렀다. 가족 끼리 세계 각국 미술관을 열심히 돈다는 그애 가족을 생각하며 선물 몇 가지를 골랐다.

엄밀히 말하면, 그네 가족 생각이라기 보다는 내가 그 집에 머물렀던 '기억'에 대한 생각이다. 그 기억 속에 기묘 남편, 익이, 그리고 윤이가 있다.

흠..., 어쩌면 그들이 있다기 보다는, 기타를 치던 그애 남편의 모습과 욕심이란 없이 정갈하기만 하던 기타 울림, 레고를 가지고 꼬물락 꼬물락 내 앞에서 놀던 두 아이의 모습, 모든 식구가 나가고 낯선 (그렇다고 아주 낯설지만도 않은) 집에서 혼자 듣던 음악, 고쳐 놓고 온 익이의 바이올린, 그런 소소한 장면과 소리가 있다고 해야 겠다. 어쨌든 그런 것들이 요 몇일 동안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기묘의 두 아이 익이와 윤이를 생각하면 내 자식인 하늘이와 바다를 생각할 때처럼 그렇게 마음이 아리고 애잔해진다. 기묘와 내가 함께 보냈던 수많은 바보 같은 시간들이 - 근 삼십년 간의 - 반죽된 형상들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무엇이었던 간에, 나에게 이런 기억과 느낌을 준 기묘에게 고맙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친구지만, 나에게 남은 기묘에 대한 유일한 감정의 알갱이는 '고마움'이다. 좋아하고, 싫어하고, 화나고, 서운하고, 그런 것들은 그냥 부유하는 먼지 같은 감정들일 뿐이고, 내 손 안에서 굴러 다니는 것은 아주 단단하고 딱딱하고 거칠거리는 '고마움'의 알갱이라는 것.

이런 생각을 하며 플린트 미술관에서 고른 선물들이다. 이 선물들이 내 '마음'을 전해주면 좋겠다.
 내가 왜 이런 선물들을 골랐는지 기묘는 설명없이도 한눈에 파악할거다. 말이 없어야 더 잘 통하는게 기묘와 나였으니. 그리고 우린 여전히 그렇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으니.

댓글 2개:

  1. 원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는 거 아니야? 비와도 그립고 푸른 날도 그립고. 역시 현수는 예술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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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게, 이유도 없이 그리운게 많으이^^ 너도 그렇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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