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누나들 |
일곱색깔 무지개 중 네 명, 2012년 초 봄 |
마지막 여행 |
중학교 2학년 말 |
중학교 2학년 소풍 |
일곱색깔무지개는 중학교 벗들의 모임 이름이다. 중학교 2학년 같은 반에서 마음 맞춰 웃고 울고 떠들던 친구들이다. 우연히도 모인게 일곱명이라, 각자 색깔을 가졌다. 바로 그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중, 빨강, 노랑, 주황, 보라인 내가, 미국에, 각각 뉴 올리온즈,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그리고 미시건에 살고 있다.
텍사스에서 오년을 보내고 미시건으로 이사 왔던 2009년, 뉴욕의 빨강과 시카고의 주황이 냉큼 미시건까지 와서 그 해 말을 이십 여년 만에 함께 보냈다. 그리고는 작당을 했다. 일년에 한번씩 일곱색깔무지개 여행을 가자.
2012년 봄 그 첫 여행이 이루어졌다. 빨강의 본거지인 뉴욕에서. 빨강이 잡은 뉴욕 라 구아디아 (어쩌면 케네디) 공항 근처 호텔에 모였을 때 우리는 넷이었다. 빨강, 주황, 나 외에도 파랑 기묘가 한국에서 날아와 합류했기 때문이다.
일곱 중, 넷이 모였으니 역사적인 첫 여행은 성공적인 거였다. 뉴욕 맨하탄의 박물관이며 음식점이며 상점들을 깔깔거리며 누비고 다녔다. 함께 보았던 오프 브로드웨이의 <애버뉴 Q>를 보러가던 비오던 그 거리조차 공연의 한 장면처럼 흥분되고 가슴 떨렸다.
저녁 호텔로 돌아 오는 길에 빨강이 사들고 와서 먹었던 고구마 케익은 왜 그리 맛있었던가. 아침 저녁으로 호텔방을 가득 메웠던 우리들의 수다는 어쩌면 그렇게도 가벼우면서도 걸죽하고, 신이나면서도 무거웠으며, 좋아 죽는 한편으론 왜 그리 아팠던가.
십대의 우리가 사십대의 여자들로 만나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 만으로도 믿기지 않는 시간이었다.
요즘은 사십 대의 여자들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 눈물의 시작은 분명 일곱색깔 무지개 친구들과 갔던 뉴욕 현대미술관 (MOMA)이었다. 여전히 흥분에 깔깔거리며 넷이 함께 들어섰던 미술관이었다. 우리는 작품들을 구경하며 한걸음 한걸음 각자 이끌리는 대로 빠져들어갔다.
이 작품에서 내 30대가 보였다. |
그들의 외침, 그들의 고통, 그들이 통과해온 시간과 노력이, 그때 그 순간, 뉴욕이라는 전혀 뜻밖의 공간에서 다시 뭉친 우리 네 사람이 각기 지나왔을 지난 이 십년의 세월과 모두 뒤엉켜 하나가 되어 박물관 전체를 메우는 것 같았다.
MOMA (뉴욕 현대 미술관) 에서 |
작품을 보려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는 사라져 버리고, 나는 그냥 박물관 중간 복도 어디쯤엔가에선가 복받친 울음을 어찌할지 모르는 채로 서성였다.
어느결인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온 빨강의 어깨를 붙잡고 정신이 돌아올때까지 울었던 것 같다. 뜬금없는 나의 행동과 눈물에 당황하고 놀란 빨강에게 '너무 좋아. 너희와 함께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게 너무나 좋아.'를 반복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그때의 마음이 그대로 살아나며 눈물이 난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해리가 마법의 물에 얼굴을 넣고 가려져 있던 진실의 장면을 낱낱이 보게 됐을 때 받았던 충격과 깨달음의 느낌 같은 것이랄까.
드라마를 보는 것도 시들해진 요즘, 별 재미도 내용도 없는 <꽃보다 누나>를 꼬박 꼬박 챙겨본다. <꽃보다 누나>에는 40십 넘은 네 여배우들이 여행을 한다. 둘은 사십이 조금 넘은 김희애와 이미연이고 나머지 둘은 사십이 훌쩍 넘은 윤여정과 김자옥이다. 처음에는 사십도 넘은 그들이 참 예뻐서 보기 시작했다. 사십대 여자들이 무척 해맑게 예뻐서 보기가 좋았고 자꾸 보고싶어 졌다.
그러다, 그들이 여행 중에 기막힌 풍경에 말을 잊을 때, 묵묵히 혼자 걸을때, 생각에 잠기는 걸 볼때, 고국의 누군가가 보낸 우연한 문자에 갑자기 표정이 멈출때, 그 어느 슬픈 드라마를 볼 때보다 빨리, 더 무겁에, 심지어는 정작 그들보다도 먼저 마음이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지금 나의 사십 대는 사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특별히 더 바라는 것도 욕심나는 것도 더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 반면, 나의 삼십 대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에서 다시 돌아봐도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지나간 모든 것은 다 아름답게 느껴진다는데, 나에겐 지금도 그 시절이 어쩌면 사춘기 시절보다도 하루 하루가 길었던 나날들로 남아있다. 그때의 일기들을 봐도 그 시절을 어떻게든 버텨 통과해 보려는 힘겨운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세상을 깨고 나왔을 아기 때의 묻혀진 기억이 떠오른다 해도, 삼십 대를 버티기 위해 들였던 그 힘에 비할 바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찌 어찌 다다른 사십대는 그때에 비하면 한결 가볍고 편안하며 평화롭다. 그 이유는, 말하자면, 시간이란 걸 영속하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스쳐가는 지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힘든 시간이 내게 준 보상으로 말이다.
사건의 시작, 진행, 결말을 나열하는 그 어떤 산문보다, 간혹, 시의 한 단어, 한 구절에 모든 허구와 진실이 관통하듯, 사십을 넘은 여자들을 만나면 웃으며 울고, 울면서 웃어진다. 가까이 하기에 먼 당신들로만 여겨졌던 시어머니나 아랫 동서가 한결 편해진 것도 그래서일테다.
<꽃보다 누나> 여행이 오늘로 끝이 났다. 김희애를 보며 한 번 울고, 이미연을 보며 한 번 울고, 윤여정을 보며 또 한번 울었다. 그냥 그들이 나 같고, 내가 그들 같아서.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여행이 좋은 거지. 자기자신의 모습을 낯선 곳에서 만나는 것. 다음 여행 생각만 해도 기운이 나서 일상이 즐겁다. 유월 빨리 와라!
답글삭제유월 빨리 와라! 근데 비행기표 언제 끊을까??^^ 캔쿤도 잘 되어가겠지??
삭제Expedia에서 알아보는 중! 날짜가 먼저 잡혀야! 이번 해에는 멕시코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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