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0일 금요일

꽃보다 누나

꽃보다 누나들

일곱색깔 무지개 중 네 명, 2012년 초 봄

마지막 여행
중학교 2학년 말
중학교 2학년 소풍



일곱색깔무지개는 중학교 벗들의 모임 이름이다. 중학교 2학년 같은 반에서 마음 맞춰 웃고 울고 떠들던 친구들이다. 우연히도 모인게 일곱명이라, 각자 색깔을 가졌다. 바로 그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중, 빨강, 노랑, 주황, 보라인 내가, 미국에, 각각 뉴 올리온즈,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그리고 미시건에 살고 있다.

텍사스에서 오년을 보내고 미시건으로 이사 왔던 2009년, 뉴욕의 빨강과 시카고의 주황이 냉큼 미시건까지 와서 그 해 말을 이십 여년 만에 함께 보냈다. 그리고는 작당을 했다. 일년에 한번씩 일곱색깔무지개 여행을 가자.

2012년 봄 그 첫 여행이 이루어졌다. 빨강의 본거지인 뉴욕에서. 빨강이 잡은 뉴욕 라 구아디아 (어쩌면 케네디) 공항 근처 호텔에 모였을 때 우리는 넷이었다. 빨강, 주황, 나 외에도 파랑 기묘가 한국에서 날아와 합류했기 때문이다.

일곱 중, 넷이 모였으니 역사적인 첫 여행은 성공적인 거였다. 뉴욕 맨하탄의 박물관이며 음식점이며 상점들을 깔깔거리며 누비고 다녔다. 함께 보았던 오프 브로드웨이의 <애버뉴 Q>를 보러가던 비오던 그 거리조차 공연의 한 장면처럼 흥분되고 가슴 떨렸다.

저녁 호텔로 돌아 오는 길에 빨강이 사들고 와서 먹었던 고구마 케익은 왜 그리 맛있었던가. 아침 저녁으로 호텔방을 가득 메웠던 우리들의 수다는 어쩌면 그렇게도 가벼우면서도 걸죽하고, 신이나면서도 무거웠으며, 좋아 죽는 한편으론 왜 그리 아팠던가.

십대의 우리가 사십대의 여자들로 만나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 만으로도 믿기지 않는 시간이었다.

요즘은 사십 대의 여자들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 눈물의 시작은 분명 일곱색깔 무지개 친구들과 갔던 뉴욕 현대미술관 (MOMA)이었다. 여전히 흥분에 깔깔거리며 넷이 함께 들어섰던 미술관이었다. 우리는 작품들을 구경하며 한걸음 한걸음 각자 이끌리는 대로 빠져들어갔다.

이 작품에서 내 30대가 보였다.
20세기 미술들을 하나씩 지나쳐 가던 그 순간, 그림들이, 작품들이, 나에게 무작정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목소리로, 살아 꿈틀거리는 움직임으로, 내가 살기 이전의 또는 내가 살가던 그 순간의 뜨거운 역사적 현장이며 작가의 눈에 가득찼던 삶의 고통들을, 옴짝달싹 못하는 현실의 숨막힘을, 피를 토하듯 절규하듯 호소하듯 나에게 쏟아내는 거였다.

그들의 외침, 그들의 고통, 그들이 통과해온 시간과 노력이, 그때 그 순간, 뉴욕이라는 전혀 뜻밖의 공간에서 다시 뭉친 우리 네 사람이 각기 지나왔을 지난 이 십년의 세월과 모두 뒤엉켜 하나가 되어 박물관 전체를 메우는 것 같았다.

MOMA (뉴욕 현대 미술관) 에서

작품을 보려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는 사라져 버리고, 나는 그냥 박물관 중간 복도 어디쯤엔가에선가 복받친 울음을 어찌할지 모르는 채로 서성였다.

어느결인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온 빨강의 어깨를 붙잡고 정신이 돌아올때까지 울었던 것 같다. 뜬금없는 나의 행동과 눈물에 당황하고 놀란 빨강에게 '너무 좋아. 너희와 함께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게 너무나 좋아.'를 반복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그때의 마음이 그대로 살아나며 눈물이 난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해리가 마법의 물에 얼굴을 넣고 가려져 있던 진실의 장면을 낱낱이 보게 됐을 때 받았던 충격과 깨달음의 느낌 같은 것이랄까.

드라마를 보는 것도 시들해진 요즘, 별 재미도 내용도 없는 <꽃보다 누나>를 꼬박 꼬박 챙겨본다. <꽃보다 누나>에는 40십 넘은 네 여배우들이 여행을 한다. 둘은 사십이 조금 넘은 김희애와 이미연이고 나머지 둘은 사십이 훌쩍 넘은 윤여정과 김자옥이다. 처음에는 사십도 넘은 그들이 참 예뻐서 보기 시작했다. 사십대 여자들이 무척 해맑게 예뻐서 보기가 좋았고 자꾸 보고싶어 졌다.

그러다, 그들이 여행 중에 기막힌 풍경에 말을 잊을 때, 묵묵히 혼자 걸을때, 생각에 잠기는 걸 볼때, 고국의 누군가가 보낸 우연한 문자에 갑자기 표정이 멈출때, 그 어느 슬픈 드라마를 볼 때보다 빨리, 더 무겁에, 심지어는 정작 그들보다도 먼저 마음이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지금 나의 사십 대는 사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특별히 더 바라는 것도 욕심나는 것도 더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 반면, 나의 삼십 대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에서 다시 돌아봐도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지나간 모든 것은 다 아름답게 느껴진다는데, 나에겐 지금도 그 시절이 어쩌면 사춘기 시절보다도 하루 하루가 길었던 나날들로 남아있다. 그때의 일기들을 봐도 그 시절을 어떻게든 버텨 통과해 보려는 힘겨운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세상을 깨고 나왔을 아기 때의 묻혀진 기억이 떠오른다 해도, 삼십 대를 버티기 위해 들였던 그 힘에 비할 바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찌 어찌 다다른 사십대는 그때에 비하면 한결 가볍고 편안하며 평화롭다. 그 이유는, 말하자면, 시간이란 걸 영속하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스쳐가는 지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힘든 시간이 내게 준 보상으로 말이다.

사건의 시작, 진행, 결말을 나열하는 그 어떤 산문보다, 간혹, 시의 한 단어, 한 구절에 모든 허구와 진실이 관통하듯, 사십을 넘은 여자들을 만나면 웃으며 울고, 울면서 웃어진다. 가까이 하기에 먼 당신들로만 여겨졌던 시어머니나 아랫 동서가 한결 편해진 것도 그래서일테다.

2014년 일곱색깔무지개 여행을 계획 중이다. 조만간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를 끊을 예정이다. 일곱색깔무지개의 노랑이 혜이와 그애의 딸을 보러 간다. 같은 이유에서다. 노랑이를 이십여년만에 만나 웃으며 울고, 울면서 웃어보기 위해서다. 다른 이유는 다 그 다음이다. 그걸 못하고 그애가 죽거나, 내가 죽으면, 후회가 남아, 죽기 전까지도 그앨 생각할때마다 웃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다.

<꽃보다 누나> 여행이 오늘로 끝이 났다. 김희애를 보며 한 번 울고, 이미연을 보며 한 번 울고, 윤여정을 보며 또 한번 울었다. 그냥 그들이 나 같고, 내가 그들 같아서. 다른 이유는 없었다.

댓글 3개:

  1. 그래서 여행이 좋은 거지. 자기자신의 모습을 낯선 곳에서 만나는 것. 다음 여행 생각만 해도 기운이 나서 일상이 즐겁다. 유월 빨리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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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월 빨리 와라! 근데 비행기표 언제 끊을까??^^ 캔쿤도 잘 되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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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Expedia에서 알아보는 중! 날짜가 먼저 잡혀야! 이번 해에는 멕시코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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