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4일 화요일

2014년 어느 화요일

건강의료보험 정기 피검사를 받기로한 날이었다. 피를 뽑기 위해 어젯밤부터 금식을 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서둘러 피검사 받는 곳에 갔다. 내과에서 서류를 보내주지 않았다고 피검사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금식만 하고 검사도 못 받고 집으로 왔다.

3주간의 뜻하지 않게 길었던 미국의 겨울방학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두 번째 날 맞은 허탕이었다. 하지만 안좋은 일도 한편으로 좋은 일로 이어지는 법, 아침을 일찍 시작한 김에, 꼼지가 출근한 후, 기운을 내 반찬 만들기에 들어 갔다.

내가 해야 하는 일 중에 가장 어렵고 귀찮고 가능한한 하고 싶지 않은 게 요리다. 요리 같은 창조적이고 보람있는 일을 나이 사십이 되도록 변함없이 싫어 하다니, 나도 이런 내가 싫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에 어찌 음식 만드는 일을 피할 수 있을까. 게다가 난 엄마이자 아내인걸. 해야 하는 일이라고 받아 들인다. 다만, 어떻게 하면 좀 더 마음 가볍게, 시간을 덜 들이고 할 수 있을까를 궁리 한다.

아무리 미국에 살아 간편한 일품 요리를 주로 한다고 해도 밑반찬이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든든하다. 그나마 폭설 후 집에 있는 것을 달달 긇어 먹다 보니 그나마 있던 깻잎, 나물, 멸치 볶음도 다 떨어져 버렸다. 그 김에 멸치 볶음과 고사리 나물을 했다.

시어머님이 다 다듬어 삶아 놓고 가신 나물도 가뭄에 콩나듯 해먹는 나지만, 그래도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그럭저럭 나물 맛볼 수 있다는게 눈물날만큼 감사하다.

게다가 보통은 하루에 '요리' 하나씩만 하자 주의인데 오늘은 맘 먹고 두 개나 했다! 겉저리를 해야 겠다고 사다 놓은 배추 두 포기가 몇일째 냉장고에 있는데 역시나 그건 오늘도 못하겠다고 접기로 한다.

편한 미국 생활을 선택한 이상, 한국에서처럼 갖가지 음식을 쉽게 얻고자 하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쳐도 나의 볼품없는 요리에 입벌리고 사는 내 식구들이 늘 안되어 보인다. 나름은 노력하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늘 한구석에 있다.... 미안해, 식구들....

2014년 1월 11일 토요일

2013년 여행에 대한 기록 2

2013년에 한 여행들을 기록 삼아 적어본다.

그 전에, 2012년 마지막 여행이자, 내 본격적 여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애틀란타 (Atlanta) 여행이 12월 13 - 16일까지 있었다. 학회에 참가 하는 꼼지를 따라간 여행이었다. 새로 형성된 애틀란타 한인타운 근처에 머물면서 구경했다. 한국 미장원에 가서 파마를 했다. 아주 마음에 들어서 그 후로 일년간 그대로 손질없이 머리를 기를 수 있었다. 머물던 호텔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주점이 있어서 꼼지와 함께 막걸리 먹고 호텔까지 걸어 올 수 있었다. 애틀란타 한인타운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았다. 친절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한인들의 태도가 기분을 상하게 했다. 왜그럴까 갸우뚱 했다. 날씨가 확실히 미시건보다 온화했다.

본격적인 2013년 여행 기록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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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 - 31 시카고(Chicago) - 가족:
왜 갔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그냥 놀러 갔겠지...

5월 2 - 5 마이애미 (Miami) - 주황:
제 2차 일곱색깔무지개 여행이었다. 주황과 단 둘이라 우리가 가보고 싶은 곳을 다녀오자 했다. 가는 비행기를 놓쳐서 황당하게 달라스를 거쳐 돌고 돌아 마이애미에 간신히 도착 했다 ㅠㅠ. 호텔에 투자를 많이 해서 호텔 중심으로 주황과 함께 미친듯이 놀았다. 해변가를 따라 하루 종일 걸어 다니기도 했고 밤엔 중심가에서 항아리만한 마가리타를 시켜 마셨다. 주황과 둘이서 함께 한 여행이었던 만큼 밀린 깊은 수다도 잔뜩 뿌리고 왔다.

5월 25 -27 시카고 (Chicago) - 가족, 시어머니:
시어머님을 위해 갔던 시카고 여행. 배를 타고 도시 구경을 했다. 주황의 가족도 시내 관광을 함께 했다. 며느리 친구집이 부담스럽다고 주저 하셨던 어머님이 나름 좋아 하셨다. 나야 그 김에 주황과 또 만날 수 있어서 무조건 좋았다.

7월 2 - 4 매키나 섬 (Mackinac Island) - 바다, 주황의 가족:
꼼지가 하늘이와 시어머님을 모시고 한국을 다니러 간 사이 바다와 함께 남아 있던 나는 주황이네 식구들을 불러 함께 매키나 섬으로 여행을 갔다. 큰 호텔방 하나를 빌려서 6명이 다 함께 묵었다. 아이들은 호텔에서 놀고 수영도 하고, 메키나 섬으로 들어가서는 그간 가보지 않았던 섬 곳곳을 둘러 보았다. 하루는 미시건 반도의 더 북쪽까지 올라가 그곳에 만들어진 특이한 운하도 보고 왔다. 주황의 남편 KC가 세 남자 아이들과 두 여자를 보살피느라 고생이 많았다. 늘 그랬지만 새삼 KC에게 감사했다.

7월 19. - 21 토론토 (Toronto, Canada) - 가족, 아버지, 독일 고모:
독일에서 시카고로 오신 고모를 맞이하러 우리를 방문하고 계셨던 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이 토론토로 향했다. 간 김에 토론토 시내 관광을 했다. 도시 버스도 타고, 타워 관광도 했다. 돌아 오면서 나이아가라 폭포도 둘러 보고 왔다. 각기 큰 오빠와 막내 여동생인 아버지와 고모는 모처럼 두 분의 이야기를 꽃피우셨다.

7월 26. - 28 시카고 (Chicago) - 가족, 아버지, 독일 고모:
내 아버지가 오셨다고 주황이네가 한사코 시카고를 오라 했다. 나야 좋지 뭐... 하며 또 시카고로 쌩~ 시카고란 도시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을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소개할때마다 신이난다. 도시 관광 중에 내가 아이폰을 길바닥에서 잃어버려 찾는 소동을 부렸다. 나는 어디가나 사고 뭉치다 ㅠㅠ

 7월 31 - 8. 3 뉴욕 (New York) - 아버지, 독일 고모:
나 혼자서 두 어르신을 모시고 뉴욕을 다녀와야 한다는게 계획을 할때부터 부담스러웠다.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해서 예약한 한인민막을 찾아 갔다. 막상 뉴욕 맨하튼 한 가운데서 몇 일을 보내면서는 그 어느때보다 알차과 환상적인 관광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뉴욕 밤거리를 늦게까지 걸어 다녔다. 어르신 두 분은 하루종일 나보다도 훨 멀쩡히 걸으셨다. 어디를 모시고 가도 잘 드시고 잘 구경하시는 두 분 덕에 나도 새로운 뉴욕을 접할 수 있었다. 줄리어드 음대 야외 공연장에서 공연도 보고, 브로드웨이 한인타운에서 맛난 한국음식도 먹고, 두 다리와 택시로 잘도 다녔다. 막판엔, 내 다리에 무리가 와서 걸음을 못걸어, 두 어르신이 공항에서 나를 부축하고 다니셔야 했다 ㅠㅠ

8월 23 - 30 사우스 캐롤라이나 (South Carolina) - 가족:
내가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프리실라가 자기 고향에 있는 콘도를 공짜로 빌려 주었다. 장장 일주일에 걸친 가족 여행이었다. 가는데 1박 2일이 걸렸고 오는 날은 하루에 온 종일 걸려 돌아 왔다. 맘먹고 다녀온 올해 최대의 가족여행이었다. 여름방학의 막바지였다. 해변 근처에 있던 콘도에서 밥을 해 먹으면서 수영하고 바다를 막끽했다. 곳곳에 있는 피어에서는 주변을 헤엄쳐 다니는 상어들과 해파리들도 볼 수 있었다. 바닷개와 가재들을 파는 부페에서 배가 터지도록 해산물들을 먹어 대기도 했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다 큰 두 녀석들과 함께 하니 간혹 머리 위에서 불이 나기도 했지만 말이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가족 여행이 됐다.

9월 7 - 11 칼리지 스테이션, 오스틴, (College Station, Austin at Texas) - 꼼지:
꼼지 일관계로 텍사스엘 갔다. 텍사스의 칼리지 스테이션과 오스틴은 미국에서 우리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힘들었지만 꼼지와 내 인생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중요한 궤적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둘 다 감회가 새로웠다. 미국에 와서 처음 살았던 아파트에도 가보고 꼼지 학교의 구석 구석도 둘러 보았다. 오랜만에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그곳에서 살고 계시는 한국분들도 만나 뵈었다. 반겨주셔서 감사했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들이 흘러가고 다시 가본 그곳,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던 여행이다.

10월 12 - 13 디트로이트 (Detroit) - 꼼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미시건의 가을이 가고 있었다. 그 시간을 잠시나마 붙들어 두고 싶었다. 바쁘다는 꼼지를 졸라 1박 2일로 가을여행을 갔다. 대신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도시 구경을 갔다. 디트로이트. 망한 도시. 한때 부와 명성으로 유명했던 도시. 로보캅의 도시. 그 도시에 마이클 잭슨과 스티브 원더, 그리고 다이아나 로스가 가수의 꿈을 키웠던 모타운 (Motown) 이 있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디트로이트 미술박물관은 기대 이상이었다. 너무나 훌륭했고 많은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만난 재즈 카페는 파산한 도시라는 지금의 디트로이트를 잊게 하였다. 가까운 곳에도 내가 다 만나지 못한 여행들이 있었다.

11월 27 - 30 시카고 (Chicago) - 가족:
미국의 길고 긴 Thanksgiving 연휴를 맞아 결국 다시 시카고 방문. 나에게 주황이 있어 행복할 뿐이다! 주황의 엄마가 싸다 주신 맛난 음식들로 몇일간을 먹고 마시고 얘기하고 음악하며 보내다 왔다. 그렇게 보내도 돌아올때면 늘 아쉽다.

12월 12 -16 샌 프란시스코 (San Francisco) - 꼼지, 대학원생 2명:
다시 꼼지의 학회 출장에 동행했다. 학회가 산 호세 (San Jose) 에서 열렸기 때문에 첫 몇일은 내내 산 호세에 머물렀다. 학회가 끝난 날 샌 프란시스코에 기차를 타고 왔다. 그곳에 하루를 묵으면서 도시 주변을 구경했다. 샌 프란시스코의 명물 케이블 차도 탔다. 명성처럼 가로수도 길도, 귀여운 집들도 해변가에 빨래처럼 널부러진 물개들도 희한하기만 했던 도시다. 짧게 머물러야 하는게 무척 아쉬웠다. 2013년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샌 프란시스코를 여행하며 'San Francisco'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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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기록해 보니 바쁘게 다닌 한 해였다. 그만큼 행복하고 즐겁고 마음도 깊어진 한 해였던 것 같다. 저 많은 여행 일정들 사이로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번 꼼지와 연습, 반주, 연주를 쉼없이 이어간 내가 무지 기특하고 대견하게 느껴진다. 칭찬해 주고 싶다^^

2013년 여행에 대한 기록 1

여행의 길목에서 짓게 되는 표정. 텍사스 휴스턴 공항에서.
우리 가족이 미시건에 와서 둥지를 튼 이후 여행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시간과 돈이 생길 때를 기다려 여행을 하지 말고 여행을 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만들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우리집에서 5시간 정도 걸리는 시카고를 주황이를 만나고자 자주 다니게 되면서 그 마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짧게든 길게든 여행이란 이름 아래 만나는 새로운 공간과 시간이 마술처럼 나에게 새로운 눈과 마음을 그리고 살아 가는 힘을 준다는 것을 절절히 깨달아 가는 중이다. 그러다보니 시카고 정도는 더이상 방문 횟수를 따져 보는 게 의미 없을 만큼 자주 가는 도시가 되었다.

2012년 봄에 처음 떠난 일곱색깔무지개 여행도 해마다 계속될 예정이다. 작년엔 주황과 둘이서 달랑 마이애미를 다녀왔지만, 올해 로스엔젤레스로 계획된 여행에는 우리 둘 외에 다른 친구들도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 외에도 꼼지가 학회차 출창을 가게 될때도 최대한 따라나서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걱정이었지만, 이제 각기 고등학교 1, 2학년이 된 바다와 하늘이가 좀 더 독립적으로 성장하는데도 엄마 아빠의 부재가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그렇다고 하늘과 바다가 엄마 아빠가 없는 동안 모든 걸 성공적으로 다 잘(?) 하고 있었으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부부의 여행 중에 애들이 늦잠을 자버려 결국 학교를 결석하는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 여행 중, 호텔에서 새벽에 걸려온 전화 너머로 '엄마, 늦게 일어 나서 학교버스 놓쳤어요 ㅠㅠ'란 말을 들었던 그 순간엔, 그야말로 허걱! 하고 기가 막혔더랬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그런 실수 따윈 하늘 바다가 앞으로 살아 가며 부딪치게될 사건사고들에 비한다면 새발에 피도 안되는 걸테다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런 일을 통해서, 나는 아이들의 실수들에 좀 더 침착하고 담담해지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실수에서 얻은 교훈으로 좀 더 단단하게 커갈꺼라 믿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2014년의 여행은 주~욱 계속 될꺼라는 말이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동안 또 하나의 새로운 탐험과 배움으로서 여행을 곁에 두고 싶다.

긴 여행이 사정상 어려운 계절에는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라도 일삼아 다녀 볼 계획이다.

2014년 1월 10일 금요일

꽃보다 누나

꽃보다 누나들

일곱색깔 무지개 중 네 명, 2012년 초 봄

마지막 여행
중학교 2학년 말
중학교 2학년 소풍



일곱색깔무지개는 중학교 벗들의 모임 이름이다. 중학교 2학년 같은 반에서 마음 맞춰 웃고 울고 떠들던 친구들이다. 우연히도 모인게 일곱명이라, 각자 색깔을 가졌다. 바로 그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중, 빨강, 노랑, 주황, 보라인 내가, 미국에, 각각 뉴 올리온즈,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그리고 미시건에 살고 있다.

텍사스에서 오년을 보내고 미시건으로 이사 왔던 2009년, 뉴욕의 빨강과 시카고의 주황이 냉큼 미시건까지 와서 그 해 말을 이십 여년 만에 함께 보냈다. 그리고는 작당을 했다. 일년에 한번씩 일곱색깔무지개 여행을 가자.

2012년 봄 그 첫 여행이 이루어졌다. 빨강의 본거지인 뉴욕에서. 빨강이 잡은 뉴욕 라 구아디아 (어쩌면 케네디) 공항 근처 호텔에 모였을 때 우리는 넷이었다. 빨강, 주황, 나 외에도 파랑 기묘가 한국에서 날아와 합류했기 때문이다.

일곱 중, 넷이 모였으니 역사적인 첫 여행은 성공적인 거였다. 뉴욕 맨하탄의 박물관이며 음식점이며 상점들을 깔깔거리며 누비고 다녔다. 함께 보았던 오프 브로드웨이의 <애버뉴 Q>를 보러가던 비오던 그 거리조차 공연의 한 장면처럼 흥분되고 가슴 떨렸다.

저녁 호텔로 돌아 오는 길에 빨강이 사들고 와서 먹었던 고구마 케익은 왜 그리 맛있었던가. 아침 저녁으로 호텔방을 가득 메웠던 우리들의 수다는 어쩌면 그렇게도 가벼우면서도 걸죽하고, 신이나면서도 무거웠으며, 좋아 죽는 한편으론 왜 그리 아팠던가.

십대의 우리가 사십대의 여자들로 만나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 만으로도 믿기지 않는 시간이었다.

요즘은 사십 대의 여자들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 눈물의 시작은 분명 일곱색깔 무지개 친구들과 갔던 뉴욕 현대미술관 (MOMA)이었다. 여전히 흥분에 깔깔거리며 넷이 함께 들어섰던 미술관이었다. 우리는 작품들을 구경하며 한걸음 한걸음 각자 이끌리는 대로 빠져들어갔다.

이 작품에서 내 30대가 보였다.
20세기 미술들을 하나씩 지나쳐 가던 그 순간, 그림들이, 작품들이, 나에게 무작정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목소리로, 살아 꿈틀거리는 움직임으로, 내가 살기 이전의 또는 내가 살가던 그 순간의 뜨거운 역사적 현장이며 작가의 눈에 가득찼던 삶의 고통들을, 옴짝달싹 못하는 현실의 숨막힘을, 피를 토하듯 절규하듯 호소하듯 나에게 쏟아내는 거였다.

그들의 외침, 그들의 고통, 그들이 통과해온 시간과 노력이, 그때 그 순간, 뉴욕이라는 전혀 뜻밖의 공간에서 다시 뭉친 우리 네 사람이 각기 지나왔을 지난 이 십년의 세월과 모두 뒤엉켜 하나가 되어 박물관 전체를 메우는 것 같았다.

MOMA (뉴욕 현대 미술관) 에서

작품을 보려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는 사라져 버리고, 나는 그냥 박물관 중간 복도 어디쯤엔가에선가 복받친 울음을 어찌할지 모르는 채로 서성였다.

어느결인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온 빨강의 어깨를 붙잡고 정신이 돌아올때까지 울었던 것 같다. 뜬금없는 나의 행동과 눈물에 당황하고 놀란 빨강에게 '너무 좋아. 너희와 함께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게 너무나 좋아.'를 반복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그때의 마음이 그대로 살아나며 눈물이 난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해리가 마법의 물에 얼굴을 넣고 가려져 있던 진실의 장면을 낱낱이 보게 됐을 때 받았던 충격과 깨달음의 느낌 같은 것이랄까.

드라마를 보는 것도 시들해진 요즘, 별 재미도 내용도 없는 <꽃보다 누나>를 꼬박 꼬박 챙겨본다. <꽃보다 누나>에는 40십 넘은 네 여배우들이 여행을 한다. 둘은 사십이 조금 넘은 김희애와 이미연이고 나머지 둘은 사십이 훌쩍 넘은 윤여정과 김자옥이다. 처음에는 사십도 넘은 그들이 참 예뻐서 보기 시작했다. 사십대 여자들이 무척 해맑게 예뻐서 보기가 좋았고 자꾸 보고싶어 졌다.

그러다, 그들이 여행 중에 기막힌 풍경에 말을 잊을 때, 묵묵히 혼자 걸을때, 생각에 잠기는 걸 볼때, 고국의 누군가가 보낸 우연한 문자에 갑자기 표정이 멈출때, 그 어느 슬픈 드라마를 볼 때보다 빨리, 더 무겁에, 심지어는 정작 그들보다도 먼저 마음이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지금 나의 사십 대는 사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특별히 더 바라는 것도 욕심나는 것도 더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 반면, 나의 삼십 대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에서 다시 돌아봐도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지나간 모든 것은 다 아름답게 느껴진다는데, 나에겐 지금도 그 시절이 어쩌면 사춘기 시절보다도 하루 하루가 길었던 나날들로 남아있다. 그때의 일기들을 봐도 그 시절을 어떻게든 버텨 통과해 보려는 힘겨운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세상을 깨고 나왔을 아기 때의 묻혀진 기억이 떠오른다 해도, 삼십 대를 버티기 위해 들였던 그 힘에 비할 바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찌 어찌 다다른 사십대는 그때에 비하면 한결 가볍고 편안하며 평화롭다. 그 이유는, 말하자면, 시간이란 걸 영속하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스쳐가는 지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힘든 시간이 내게 준 보상으로 말이다.

사건의 시작, 진행, 결말을 나열하는 그 어떤 산문보다, 간혹, 시의 한 단어, 한 구절에 모든 허구와 진실이 관통하듯, 사십을 넘은 여자들을 만나면 웃으며 울고, 울면서 웃어진다. 가까이 하기에 먼 당신들로만 여겨졌던 시어머니나 아랫 동서가 한결 편해진 것도 그래서일테다.

2014년 일곱색깔무지개 여행을 계획 중이다. 조만간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를 끊을 예정이다. 일곱색깔무지개의 노랑이 혜이와 그애의 딸을 보러 간다. 같은 이유에서다. 노랑이를 이십여년만에 만나 웃으며 울고, 울면서 웃어보기 위해서다. 다른 이유는 다 그 다음이다. 그걸 못하고 그애가 죽거나, 내가 죽으면, 후회가 남아, 죽기 전까지도 그앨 생각할때마다 웃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다.

<꽃보다 누나> 여행이 오늘로 끝이 났다. 김희애를 보며 한 번 울고, 이미연을 보며 한 번 울고, 윤여정을 보며 또 한번 울었다. 그냥 그들이 나 같고, 내가 그들 같아서. 다른 이유는 없었다.

DUNE 1 and 2

한국에서 Dune 1을 본게 아마도 나온 직후. 이유는 모르겠으나, 영화 예고편을 보자마자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라메라는 배우에 빠졌다. 부드럽고 섬세해서 유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배우가 강한 카르스마까지 아우르니 그의 연기에 빠져들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