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오던 날 |
그렇게 작은 내방을 차지하고 있던 그랜드 피아노를 결혼하고 한 참 후까지도 신혼집에 들여 놓지 못하다가, 결국 두 칸짜리 반지하방이며 시부모님과 함께 살던 상가 2층 집으로 어렵게 어렵게 지고 다녔다. 시부모님, 막내 도련님까지 함께 살던 집에서 하늘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때다. 피아노 방을 쓰던 도련님이 없는 동안 오랜만에 피아노를 쳐보다가 이게 무슨 분수에 맞지 않은 짓인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피아노가 나에게 뭐라고, 그런 생각과 함께 애 낳고 앞으로 연주 할 일도 없을 내가 그랜드 피아노가 사는 데 뭔 소용이겠냐, 내가 함께 사는 가족에게 짐일 뿐이지 싶어 처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길로 조율사에게 전화를 해 평범한 중고 영창 upright 피아노와 삼익 그랜드 피아노를 교환했다. 그때 엄마와 아버지는 '네 것이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만 하셨다. 그런데 그때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긴 했지만, 나이 먹어 갈수록 이 기억을 할때마나 마음 한구석이 결렸다. 버린 삼익 그랜드 피아노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엄마 아버지 마음을 나중에서야 제대로 헤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미안한 마음에 제대로 내색도 못했겠지만, 꼼지가 많이 안타까워 하고 미안해 했다는 걸 안다. 꼼지의 결정도, 잘못도 아니었건만, 나이 먹어 함께 늙어 가면서는 간혹 농담 삼아 '돈 벌어 그랜드 피아노 사주마'고도 했다.
미시건에 와서 정착한지 2년 반 정도가 된 작년 가을 끝, 그 말이 현실이 됐다. 오래 묵혔던 덕에 마련된 목돈으로 꼼지가 정말 꿈처럼 그랜드 피아노를 사주었다. 그것도 내가 원했던 야마하 피아노로 말이다. 누구에게 자랑하면 꿈처럼 사라지기라도 할까봐 아주 친한 친구 두 명 외에는 지금까지 몇 달 동안 다른 이들에게 구태여 소문도 내지 않았다.
이제 내게 야마하 그랜드가 생긴지 한 삼 사개월이 되어 간다. 그 이후로 2-3시간씩 피아노를 쳐도 그 좋은 울림과 부드러운 건반 느낌에 시간 가는 줄도, 어깨가 결려 오는 줄도 모른다. 이 피아노 덕분으로 하늘이의 첼로 리사이틀도 더 멋지게 집에서 치루어 냈다. University of Michigan at Flint 에서 반주를 하는 일도 잘 해내고 있다.
매일 아침, 피아노 뚜껑을 열고 연습을 준비하는 게 일상이 되어 간다. 음 하나를 눌러도 업라이트 피아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맑고 영롱하고 오래 지속되는 울림이 난다. 이 소리가 나에게는 그 어느 음반에서 들려오는 위대한 연주자의 연주보다도 좋다. 그런 소리를 매일 매일 내집에서 내고 들을 수 있다는게 요즘도 가끔은 믿어지지 않는다.
피아노가 집에 들어왔던 처음 몇일 동안은 눈뜨고 아래층에 내려오면, 오, 이게 정말 꿈이 아니었구나 재차 확인하며 혼자 맘껏 기뻐하곤 했다. 꼼지나 아이들이 느기는 것 이상으로 이 피아노는 나에게 매순간 큰 행복을 주는 선물이다. 그 행복에 행여나 작은 흠이라도 생길까 이제서야 공식적으로 기록한다.
내 생애 최고의 선물 야마하 그랜드: YAMAHA Grand A 5051386 (ca. 1992-1994 made in Ja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