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9일 화요일

15살, 13살 두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맘

산본 살 때, 산본 중앙공원 나들이 나가 찍은 사진.
최근 '눈코뜰새' 없이 바쁘던 꼼지가 오늘 아침 간만에 여유를 부렸다. 아이들을 등교 시킨 후, 함께 운동을 가는 일도 접어 두고, 이 참 이다 싶게 아이들 키우는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들 키우는 일이 늘 쉽지가 않다. 잘해 주면, 혹여 너무 잘해 줘서 버릇이 없어지고 고마운 걸 모르나 싶고, 대충 놓아 두면, 너무 챙겨 주지 않아 뭔가 빈구석이 생기고 상처를 받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우리집의 경우 하늘이는 느리고, 바다는 빠르다. 그러니 뭐든지 하늘이는 느려 보이고, 바다는 똘똘해 보인다. 게다가 하늘이는 첫째라 그럴 수도 있지만 눈치도 없고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잘 못읽는 편인 반면 바다는 둘째의 특성이기도 할테지만 눈치가 빠르고 애교도 잘 부린다. 그러니 학과 성적이나 둘이 함께 배우는 악기, 운동 등 여러 분야에서 하늘이는 애를 먹을 때가 많고 바다는 뭐든 수월해 보인다.

한편, 조금 더 깊이 아이들을 관찰해 보면, 하늘이는 바다보다 깊이 생각하고 정확히 사물을 판단한다. 바다는 늘 덜렁거리고 대충 파악해 실수가 많다. 하늘이는 책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이면서도 글 쓰고 사진 찍고 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바다보다 잘 한다. 바다는 수학은 빨리 배워도 글을 쓰는 일을 즐기지도 잘하지도 않는다. 뭐든 즉각적인 편이라고 해야겠다.

서로 이렇게 다른 두 아들을 보는 이 엄마의 맘은, 형제이니 서로 경쟁하는 맘이 있더라도 그저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경하면서 자랐으면 하는 거다. 엄마로서 보기에 어느 날은 이쪽이 기우는 것 같으면 다른 날은 저쪽이 기우는 것 같아서, 그 균형을 맞추려 나름 노심 초사 한다. 엄마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완전 할 수 없으니 아이들은 여전히 또 다른 불균형이나 차별을 느낄게다. 하늘이가 보기에 엄마는 음악을 더 잘 하는 바다를 예뻐하는 것 같기도 할테고, 바다 쪽에서는 형에게 말 한마디 잘못하면 무조건 날벼락부터 내리는 엄마가 서운할테다.

게다가 엄마란 사람도 모자른 인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복잡한 변수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엄마도 아빠도 간혹 전혀 어른답지 않게(!) 자기 감정에 빠져 말도 안되는 실수나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

나의 이런 고민을 들으면 꼼지는 내가 너무 민감하게 아이들의 감정과 상태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한다. 사람이 사는 일에 사실 '인과응보'라는 게 별로 없다는 주장인데, 말하자면, 거지 같이 커도 잘 돼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대접 받고 살아도 나쁘게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가끔은 피할 수 없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듯이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조심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되도록 위험한 곳과 일을 피하고 기본적인 안전 수칙은 지키고 살돼, 비행기 사고가 무서와 비행기를 절대 안타거나 하지는 말자는 거다. 아이들을 밥 먹이고, 학교 보내고, 폭력으로 가르치지 않고, 대화하고, 곁에 있어 주고, 안전하게 돌봐주면 된거란다. 그 이상 너무 안달복달 하면서 민감할 필요는 없다는 게 꼼지의 주장이자 믿음이자 조언이었다.

결국 사람 사는 일도 동물이나 사물이 존재하는 법칙에 크게 벗어 나지 않아서, 수많은 우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될지, 무엇이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없는 삶을 살 뿐이다. 이런 이치를 이해하면서도, 나는 비록 미세할지라도 필연적 변화란게 가능하다는 믿음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청소년기 두 아들을 키우며 매일 매일이 더 고민인가 보다.

꼼지는 되도록 아이들에게 신경을 끄고 내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더 보내며 살란다. 그래야 집안이 조용하다고 말이다. 나야 지금이라도 당장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정말 그렇게 해도 될까.

아이들에게 적정한 거리 두기. 늘 같은 숙제, 하지만 늘 어려운 숙제다.
디트로이트 오토쇼 2013 에서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열 다섯 살 하늘이의 첼로 독주회 날 풍경.


하늘이가 마틴 선생님과 연주 했던 비발디의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

연주회 시작하기 전. 꽤 많은 친구들과 이웃들이 찾아와 주었다.
왼쪽이 앤아버에 계신 하늘이의 첼로 선생님 마틴 토치이시 (Martin Torch-Ishii). 일찍와서 하늘이 마지막 연습을 봐주시고 연주회를 마치고도 마지막까지 남아 계시다 나와 많은 얘기를 나누시고 다시 앤아버로 돌아가셨다.

이렇게 성장한 하늘이를 보여 줄 다른 가족이나 친척이 없다는게 맘 한켠으로 아쉬웠다.



연주 후 기념 촬영.아빠와 바다를 빼먹어서 미안~
급하게 잡힌 연주회 였는데도 어른 현악반 친구들이며,꼼지 학교 동료 교수 가족들이며, 주변의 가까운 한국 이웃들이 흔쾌이 와주어서 너무 감사했다.

하늘이는 모두 다섯 곡 중에서 두 곡은 멋지게 연주 했고, 한 곡은 그럭저럭, 나머지 두 곡은 큰 실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곡마다 자기가 스스로 곡 설명을 앞서 하고 연주를 하는게 대견했다. 연주가 끝난 후에는, 들어주는 사람들의 진지한 모습에 자기 자신도 연주하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늘에서 엄마도 보고 계셨으려니 생각한다. 하늘이 낳고 그렇게 좋아 하셨던 엄마. 누구보다도 하늘이를 예뻐하고 아끼셨던 엄마. 하늘이의 행사가 있는 날이면 엄마가 더욱 많이 생각나고 그립다.

그리고 미국에 우리 아이들의 성장을 나와 같은 맘으로 함께 지켜봐주고 격려해 줄 친척이 없다는게 아쉬울 때가 많다. 한국의 아버지와 언니네 가족, 그리고 시어머님, 시댁 작은아버님네, 하늘이의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 등등, 그 분들 생각이 많이 나던 날이다.

세영씨 방문

한국에서 온 올해의 첫 손님으로 꼼지의 후배 세영씨가 왔다. 미국 출장길 중에 사박 오일 정도를 우리집에서 묵었다. 텍사스에서 꼼지와 비슷한 시기에 공부를 하고 졸업을 했던 후배다. 혈액형을 물었더니 B형이라고 하는데 겉보기엔 소심한 A형 꼼지와 상당히 비슷해 보이는 사람이다. 키는 훌쩍 커서 덩치가 작은 편이 아닌데도 걸어다는 소리도 없을 정도로 있는 듯 없는 듯 움직여 다니는게 인상적이었다.

특별한 손님 대접 같은 걸 잘 못하는 내가 그저 평범한 상차림을 내놓을 때마다 맛있게 아무거나 잘 먹어 주었다. 먹고 난 후엔 깎듯이 인사를 붙이는 것도 고마웠다. 자기는 치우고 정리하는 건 잘한다며 자고 난 방 침대며, 마시고 난 찻잔까지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아래층으로 바로 들고와 치워주었는데, 이런 모습도 그 세대의 남자들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기억에 남았다.

세영씨에 관한 기억은 무엇보다 우리가 자동차 사고를 당했을때 일부러 오스틴 우리집에 문병을 왔던 일이다. 병원에서 퇴원해 하루 종일 집 침대 위에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던 때였다. 그리 살가운 편도 아닌 사람이 선배의 부인인 내 병상 옆에 의자를 놓고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갔다. 그 때 내 부탁으로 공부하던 대학원에 휴학계 서류 내는 일을 대신 해 주기도 했었다.

어쨌든 세영씨가 그렇게 조용하고 깔끔하게 다녀 갔다. 서로 살갑게 대할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나누지 못한 사람인데도 왠지 찾아 와 준게 반갑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누군가 왔다 가면, 이제 또 언제 보려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정말 참하고 예쁘고 귀여운 부인과 아이 둘이 있는데 언제가 그 가족들과 함께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바래본다.

2013년 1월 25일 금요일

Dort Scholarship Audition at FIM

하늘 바다가 지난 주 수요일에 플린트(Flint) 음악원에서 열리는 Dort Scholarship 오디션을 보고 왔다. 하늘이는 예전에 한 번 지원 했다가 떨어진 적이 있고 바다는 10살때 처음으로 오디션에 응모 했는데 운 좋게 우승을 해서 1200불의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는 오디션이다.

플린트 음악원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하늘이와 동갑의 미첼도 지원해서 세 명이 경쟁 했다. 바다는 감기 몸살이 시작되어 열이 나는 몸으로 연주에 해야 했다. 하늘이는 리사이틀에서 연주했던 2곡을 했던 터라 그래도 부담이 덜해 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바다는 연주 하는 카발레프스키 (Kabalevsky) 바이올린 협주곡 다장조 1, 2 악장이 쉬운 곡이 아니었다. 그래서 평소보다는 조금 더 연습하는 것 같았는데, 몸이 아파 잘 못 할 것 같아 속상했는지, 시험장에 들어 가기전 연습을 하면서는 눈물을 뚝뚝 흘렸 더랬다.

아들 둘이 같은 장학금을 놓고 경쟁하는터라 서로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론 서로를 응원하자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경쟁한 세 명 중 그 누가 우승을 하더라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자고 했다.

하늘 바다를 오디션에 임하게 하고 그 둘을 반주해 주는 게 신나는 일만은 아니다. 내 아들들이니 엄마 노릇도 해줘야 하고 반주자 역할도 해줘야 하고, 한편으론 선생님으로서 조언도 동시에 해줘야 한다. 쉽지만은 않다. 힘들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그저 이런 기회가 하늘 바다에게 또다른 인생 공부의 시간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힘을 낼 뿐이다.

결과야 어떻게 되든, 일단 하늘이가 이번에 오디션에 도전해준 것이 기뻤고, 또 둘 다 최고의 연주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큰 실수나 무리 없이 오디션을 해낸 것이 자랑스러웠다. 또 한번 하늘 바다가 자기들 생애에 작은 역사를 만드는 걸 목격한 기분이었달까.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아빠와 함께 중국 식당에 가서 즐겁게 저녁을 먹었다. 긴장과 부담에 얼굴이 굳었던 아이들이 환해졌다. 둘 중 하나가 장학금을 받게 되면 리사이틀을 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이 있게 된다. 그래서 둘 다 떨어지면 섭섭시원(^^) 할 것 같기도 하다.

결과는 아마도 이번 주 중 우편으로 알게 될 거다. 결과 개봉 박두~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하늘이의 첫 독주회 초대장

 이번주 일요일에 있을 하늘이의 첫 첼로 독주회(! ^^)를 위해 초대장을 만들었다. 하늘이의 첼로 선생님이 앤 아버 (Ann Arbor) 에 사셔서 거기서 연주회를 하려나 했는데, 마틴이 우리집에서 하자고 해서 준비 중이다. 집 청소를 해야 하는 작은 부담감은 있지만(^^;), 앤 아버까지 왕복 두 시간을 투자 할 필요도 없고, 주변 이웃 친구들도 편하게 초대 할 수 있을테니 훨씬 잘된 일이다.

일단, 오늘 저녁에 있을 '어른 현악반 (Adult Strings)' 동료들에게 돌릴 생각이다. 그 중 최소한 한 두 명은 오지 않을까 생각 하면서.
하늘이가 이만큼 음악을 하게 되기까지, 돌아보면 우여곡절도 꽤 많았다. 하지만 점점 깊은 울림을 담아가는 하늘이의 첼로 소리를 들으면 하늘이가 커 온 지난 세월이 다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에 뭉클해진다. 그래서 가뭄에 콩나듯 하는 연습에 간혹 시끄런 잔소리를 퍼부어 대면서도 속으로는 감사하는 마음 가득인거다.

하늘이의 삶에 음악이 좋은 친구가 되줄꺼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은 첼로 뿐 아니라, 학교에서 더블 베이스와 전자 베이스 기타 하는 것도 재미있다고 열심이다. 학교며, 오케스트라며, 개인 일상이며, 매일의 바쁜 일정 속에서 어찌 되었건 하늘이에겐 처음으로 자신만의 연주회를 갖는 일이다. 마지막 남은 일주일 동안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게 나의 몫이지 생각한다.

2013년 1월 13일 일요일

나의 사랑, 아이폰 5

내 인생에서 컴퓨터만큼 나의 일상생활을 혁신적으로 바꾼 기기가 있다면 그건 아이폰이다. 처음 아이폰을 산 건 오스틴에서다. 생전 처음으로, 전화기를 사기 위해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구매자 중 하나가 되었고 텍사스의 뙤약볕을 감내하며 첫 아이폰을 손에 쥐었다. 그 후로, 아이폰은 내 몸의 일부가 됐다.

작년 늦가을 무렵에는 새로 나온 아이폰 5을 사달라고 꼼지를 졸랐다. 매장에선 살 수도 없었고 인터넷에서 주문을 하고도 몇 주를 기다려서야 받을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 보완되어 나온 첫 제품이었다. 아이폰 5를 사람들은 혁신적인 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래도 물건은 없어서 못팔지경이란 소식이 들렸다.

아이폰 5를 받아 본 나는 겉모습은 다른 점이 없어 보여도 더 빨라지고, 더 선명해지고, 더 편리해진 변화에 만족했다. 이제 한 세 달 여가 되었는데, 특히 내가 아이폰에서 가장 즐겨 쓰는 지도와 사진, 그리고 음악듣기 기능에서는 대만족이다.

지도는, 원하는 곳을 가는 몇 개의 다른 길도 사용자가 임의로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그야말로 네비게이션이 대용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정확하고 쓰기 쉽게 되어 있어서, 요즘은, 차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정보 활동이 아이폰 하나로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다.

사진과 동영상 찍기도 선명도와 호환성, 기술성이 다 더욱 좋아졌다. 다른 어플리케이션, 예를 들면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이메일, 메시지 등에서도 이동과 편집 저장이 나같은 '기기맹'자가 남편을 괴롭히지 않고도 혼자 알아내어 편리하게 쓸 수 있다. 즉, '이렇게 되면 좋겠는데....'하고 생각하고 무작정 해보면, 놀랍게도 그런 기능이 되는 거다!

음악 듣기는 말 해 무엇하랴. 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전화를 하는 걸 유난히 싫어 하는 편이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 집중력은 더 좋아지지만 귀에 부담이 되고 불편해서 나중엔 얼얼함을 느껴 가능한한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이폰을 쓰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던 것이, 아이폰 5를 갖고 부터 확 달라졌다. 이어폰을 수저 (아이폰!) 에 동행하는 젓가락처럼 늘끼고 다니며 쓰게 된거다. 이어폰의 모양 자체도 귀에서 아무런 부담이 없고 오래 끼고 있어도 느낌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소리의 깔끔함이나 명징함도 지금까지 써봤던 그 어떤 대중적인 헤드폰보다 월등하다.

게다가 이 모든 기능이 서로 잘 연관되어 있어서 서로 다른 기능을 쉽게 오가며 쓸 수 있다. 쉽고 편리한 호환성은 아이폰을 다중적이고 입체적인 생각과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정말로 딱 맞아서, 아이폰이 나의 개인 비서 같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그러니까 시리(Siri)는 아이폰 비서의 이름인거다. 음악이나 파드캐스트를 듣다가도 시리(Siri)에게 명령을 하여 다른 기능을 쓰다가도 다시 듣던 음악을 이어 듣는 게 아주 부드럽게 연결이 된다. 더욱 기대가 되는 건, 앞으로 이런 시리의 비서 기능이 더욱 더 발전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티비든, 컴퓨터든, 전화기든,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었고, 뭐 하나 쓰려고 보면 왜이리 복잡하고 모르겠는가 하던 나다. 애플 컴퓨터를 써보고 아이폰을 갖게된 이후로는 내가 기기에 관심이 없었던게 아니고 내가 원한 기기가 따로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애플의 예술적 감각과 디자인의 혁신은 단지 겉모양이나 그림에 있지 않다. '예술적 디자인과 기능'이라는 말에 하나로 압축된 기기라고 해야 할까.

사람의 생각과 삶은 예술과 떼어 놓을 수 없다. 방식에서도 형태에서도 본질적으로 같은 한 몸이다. 기술과 기능은 그런 '사람'을 어떤 특정한 물건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일꺼다. '사람 = 예술'이란 생각을  무시하면 사람에게 적합한 물건은 탄생할 수 없다.

지금까지 '기능'적이어야 좋은 물건이고 예술 활동의 기반도 '기능'에서부터, 즉 '쓰일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음악도 '예술'만 생각하고 '기능'을 생각하지 않으면 생존의 위기를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아니, 좀 더 넗어지고 깊어졌다고 해야 겠다.

사람의 모든 '기능적'인 것들이 사람의 '창조적' 경향에서 진화해온 거라고 한다면, 기능과 기술을 목적을 포함한 사람의 모든 창조와 발명 자체가 '예술' 활동이자 그 결과물인거라고 해야한다. 그렇다면, '예술'적 사고와 착상에서 만들어진 어떤 물건이 물질적 성공에서 실패 하더라도 (잘 팔리지 못해 망한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조만간 '성공을 낳을 어머니'가 되는 걸테다.

결국 핵심은 예술적 사고, 예술적 상품, 예술적 사람 살이다. 이 모든 걸 위해선, '예술적 교육'이 절실하다. 그것이 예술에 대한 교육이던, 예술적 방식의 교육이던, 예술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던 간에.

아이폰 5에서 사랑스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시작한 글이 결국 교육으로 흘러 버렸다. 어젯밤 아이들 교육 문제로 내가 목소리를 높이고 꼼지가 화를 폭발해 집안이 한번 뒤집어졌던 탓인지도 모르지만^^;

2013년 1월 4일 금요일

나만의 글쓰기

나는 어떤식의 글쓰기를 하고 싶은가. 예전 블로그 글도 읽어 보고 이것 저것 다른 블로그도 방문해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미국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어로 글쓰는게 전같지만은 않다는 걸 느낀다. 몇 문장 쓰는데도 전에 없이 주저하는 시간이 늘어 나고 편하게 편하게 쓰자고 해도 글이 자꾸 꼬이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쓰고 싶은 글 투에 대해서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일단은 짧고 간결하게 쓰고 싶다.

물론 짧은 문장만이 잘 읽히고 재미있는건 아니다. 사실 나는 유려하되 장황함이 없는 긴 문장을 좋아한 편이다. 그동안 내가 써온 글도 보면 대체로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헌데, 글쓰기를 업으로 하지 않는 이상, 긴 문장을 쓰다보면 주어와 서술어가 흐려지고 내용의 앞 뒤를 매끄럽게 연결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든다.긴 문장을 써 놓고 고치고 또 고치다 보면 블로그에 별 것도 아닌 글 하나 쓰는데 귀한 하루를 소비 하거나, 글 쓰는 일이 부담이 되어 간단한 기록조차 미루게 될 때가 생긴다

편한 말투로 쓰고 싶다.

괜스리 많이 배운 투를 내면서 어려운 문어체를 쓰는 건 이제 나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전문적인 내용의 글을 쓸 일도 없어진 만큼 솔직한 나만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 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직설적이거나 상투적인 글을 바라는 건 아니다. 내용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도에 넘치게 고상한 척 하지 않는 정도면 좋을 것 같다.

특정한 주제로 상세한 관찰을 담는 글을 쓰고 싶다.

블로그에 글쓰는 일이 드물어지다 보니 여러가지 이야기를 글 하나에 한꺼번에 담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일상에 큰 굴곡이 없는 나같은 아줌마에게서 나올 수 있는 글은 소수의 재미없는 내용에 국한되고 만다. 예를 들면, '일어나, 밥하고, 빨래'하고, '애들과 남편 챙겨 주'고, 좀 '쉬고', '쇼핑'하고, 가끔 '여행'하는 이야기를 크게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 현상적인 기록보다는 나만의 생각이나 느낌, 또는 착상, 깨달음, 반성과 같은 내용이 훨씬 더 가치있고 성숙한 글쓰기가 아닐까 한다. 같은 책이나 음악, 영화 같은 것을 반복해서 언급 하게 되더라도 다른 주제,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글이라면 꺼리지 않을 작정이다.


예전에는,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종국에 가서 어떤 결과를 맺을 수 있을 꺼라 기대했다. 구체적인 목적이 없는데도 무언가 목적이 있는 글쓰기라고 혼자 박박 우기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새로 블로그를 정리하고 다시 잡다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는 그런 생각을 온전히 놓았다.

벌써 재 작년이 되었는데, 언니가 미국 우리집을 방문을 했을 때다. 언제라도 한국으로 내뺄 것 같이 불안해만 보이는 나를 마주한 언니가 소리쳤다.

"너, 아무 것도 아니야. 너 그렇게 훌륭한 사람 아니야. 너 뭐가 크게 될 사람도 아니야. 그런 생각은 버려. 넌 그냥 엄마야. 그냥 아내야. 그게 너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역설적이게도, '넌 아무것도 아니야'란 언니의 잔혹한 그 말 이후,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피아노를 치고, 반주를 하고,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슴 저 밑바닥까지 행복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백일몽과 현실몽의 균형이 이제서야 맞추어진걸까. 내 인생이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부담에서 벗어난 해방감이나 후련함 같은 거였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이젠 정말 가족이란 이름으로 내 아이들과 남편과 더불어 지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에 하루 하루가 더 절실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연유에서건, 지금 나의 두 발은 그 어느때보다도 굳게 현실이란 땅을 딛고 선 것 같다. 그러므로 내 글도 망상과 공상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 기댄 살붙이, 피붙이로 숙성해 가려니 믿어 본다.

2013년 1월 2일 수요일

2013년 첫 아침 산책

짧은 겨울 방학을 마치고 하늘 바다 학교가 시작했다. 더불어 나의 아침6시 기상도 다시 돌아 왔다. 꼼지의 새해 결심 중의 하나가 아침 6시 기상이라 어차피 아이들 아침을 챙겨 주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나에게 올 새해 맞이는 좋기만 하다. 꼼지를 아침마다 따로 힘들게 깨울 필요도 없을 뿐더러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추운 아침에 학교로 향하는 하늘 바다를 엄마 아빠가 함께 배웅해 주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애들이 학교로 떠나고 아침해가 조금씩 어둠을 걷어낼 무렵 완전무장을 하고 꼼지와 함께 눈덮인 집주변 단지를 산책했다. 길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혀 무척 미끄러웠다. 운동한답시고 나섰다가 미끄러져 다리라도 부러지는 낭패를 볼까봐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그렇게 천천히 새벽 산책을 했는데도 한바퀴 돌고 나니 몸이 훈훈해 지는게 찬 공기도 상쾌하다. 돌아와 여전히 게으른 습관에 젖어 있는 몸을 달래려 침대에 잠시 누웠다가 꼼지 마저 학교로 향한 후 일어나 반신욕을 했다.

지난 몇년 간도 더 건강히 살자고 계속 다짐해 왔지만 올해부터는 정말 꼼지와 나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할 수 있을 테고, 커가는 하늘 바다와 함께 우리 삶의 후반기를 꾸려나갈 수 있을 테니까.

방학 내내 식구들과 붙어 있던 시간을 뒤로하며 혼자 찻집으로 향했다.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하고, 마음도 고르는 나만의 시간을 만드는 것, 이 또한 올 해도 계속될 일이다.

2013년 1월 1일 화요일

2013년 첫 날

2013 이란 숫자를 치는데 역시 몇 번이나 틀린다. 이제는 20.. 이란 앞의 두 숫자를 치는데 좀 익숙해질만도 한데 여전히 그 두 숫자와 합쳐진, '이 천' 하고도 '십...' 이란 그것들이 한번에 맞게 쳐지질 않는다. 여기에 새로운 '삼'이 붙었으니, 가뜩이나 숫자에 젬병인 나는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

한국에도 미국에도 새 해 새 날이 밝았다. 무엇보다 어젯밤 가족들과 함께 나눈 나의 새해 결심을 기록해 두어야겠다.


- 꼼지 학교에 아침마다 함께 가서 운동하기.
- 1년 동안 책을 최소한 10권 이상 읽기.
- 맛있는 요리 더 많이 하기.


새해 결심을 더 이상 갖는 것도 나에겐 과도한 욕심인 것 같아 이 세 가지만이라도 열심히 실천해 보기로 한다. 사십대 중반이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시기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 생각이 계속 현실이 되도록 올 해도 내 맘에서 우러난 즐겁고 신나고 행복한 일들을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나눌 생각이다.

DUNE 1 and 2

한국에서 Dune 1을 본게 아마도 나온 직후. 이유는 모르겠으나, 영화 예고편을 보자마자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라메라는 배우에 빠졌다. 부드럽고 섬세해서 유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배우가 강한 카르스마까지 아우르니 그의 연기에 빠져들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