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본 살 때, 산본 중앙공원 나들이 나가 찍은 사진. |
아이들 키우는 일이 늘 쉽지가 않다. 잘해 주면, 혹여 너무 잘해 줘서 버릇이 없어지고 고마운 걸 모르나 싶고, 대충 놓아 두면, 너무 챙겨 주지 않아 뭔가 빈구석이 생기고 상처를 받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우리집의 경우 하늘이는 느리고, 바다는 빠르다. 그러니 뭐든지 하늘이는 느려 보이고, 바다는 똘똘해 보인다. 게다가 하늘이는 첫째라 그럴 수도 있지만 눈치도 없고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잘 못읽는 편인 반면 바다는 둘째의 특성이기도 할테지만 눈치가 빠르고 애교도 잘 부린다. 그러니 학과 성적이나 둘이 함께 배우는 악기, 운동 등 여러 분야에서 하늘이는 애를 먹을 때가 많고 바다는 뭐든 수월해 보인다.
한편, 조금 더 깊이 아이들을 관찰해 보면, 하늘이는 바다보다 깊이 생각하고 정확히 사물을 판단한다. 바다는 늘 덜렁거리고 대충 파악해 실수가 많다. 하늘이는 책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이면서도 글 쓰고 사진 찍고 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바다보다 잘 한다. 바다는 수학은 빨리 배워도 글을 쓰는 일을 즐기지도 잘하지도 않는다. 뭐든 즉각적인 편이라고 해야겠다.
서로 이렇게 다른 두 아들을 보는 이 엄마의 맘은, 형제이니 서로 경쟁하는 맘이 있더라도 그저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경하면서 자랐으면 하는 거다. 엄마로서 보기에 어느 날은 이쪽이 기우는 것 같으면 다른 날은 저쪽이 기우는 것 같아서, 그 균형을 맞추려 나름 노심 초사 한다. 엄마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완전 할 수 없으니 아이들은 여전히 또 다른 불균형이나 차별을 느낄게다. 하늘이가 보기에 엄마는 음악을 더 잘 하는 바다를 예뻐하는 것 같기도 할테고, 바다 쪽에서는 형에게 말 한마디 잘못하면 무조건 날벼락부터 내리는 엄마가 서운할테다.
게다가 엄마란 사람도 모자른 인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복잡한 변수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엄마도 아빠도 간혹 전혀 어른답지 않게(!) 자기 감정에 빠져 말도 안되는 실수나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
나의 이런 고민을 들으면 꼼지는 내가 너무 민감하게 아이들의 감정과 상태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한다. 사람이 사는 일에 사실 '인과응보'라는 게 별로 없다는 주장인데, 말하자면, 거지 같이 커도 잘 돼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대접 받고 살아도 나쁘게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가끔은 피할 수 없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듯이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조심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되도록 위험한 곳과 일을 피하고 기본적인 안전 수칙은 지키고 살돼, 비행기 사고가 무서와 비행기를 절대 안타거나 하지는 말자는 거다. 아이들을 밥 먹이고, 학교 보내고, 폭력으로 가르치지 않고, 대화하고, 곁에 있어 주고, 안전하게 돌봐주면 된거란다. 그 이상 너무 안달복달 하면서 민감할 필요는 없다는 게 꼼지의 주장이자 믿음이자 조언이었다.
결국 사람 사는 일도 동물이나 사물이 존재하는 법칙에 크게 벗어 나지 않아서, 수많은 우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될지, 무엇이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없는 삶을 살 뿐이다. 이런 이치를 이해하면서도, 나는 비록 미세할지라도 필연적 변화란게 가능하다는 믿음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청소년기 두 아들을 키우며 매일 매일이 더 고민인가 보다.
꼼지는 되도록 아이들에게 신경을 끄고 내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더 보내며 살란다. 그래야 집안이 조용하다고 말이다. 나야 지금이라도 당장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정말 그렇게 해도 될까.
아이들에게 적정한 거리 두기. 늘 같은 숙제, 하지만 늘 어려운 숙제다.
디트로이트 오토쇼 2013 에서 |